트럼프가 힐러리 암살 조장? 두통거리 된 연설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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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중앙포토]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에는 '힐러리 클린턴 암살 조장' 논란에 휩싸였다. 트럼프는 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총기 소유 및 휴대 권리를 보장한 미국의 수정헌법 2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도중 "힐러리는 근본적으로 (수정헌법 2조) 폐지를 원한다. 어쨌든 그녀가 (대선에서 이겨 현재 공석 중인) 연방 대법관을 (진보성향 인사로)임명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덧붙인 발언이었다. "아마도 수정헌법 지지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총기 소유 규제를 추진하는 클린턴에 맞서 '수정헌법 2조 지지자'들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해석한 이들이 있었던 반면, 총기 소유자(수정헌법 지지자)로 하여금 클린턴을 암살 혹은 폭력을 가하도록 교사한 발언이라 받아들인 이들도 있었다.

클린턴 캠프의 로비 무크 선대본부장은 "트럼프의 말은 위험한 것으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자는 어떤 식으로든 폭력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격분했다. 민주당의 연방 하원의원 에릭 스왈웰(캘리포니아)은 트위터에 "트럼프가 누군가에게 클린턴을 죽이도록 제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CNN 등 클린턴에 상대적으로 우호적 보도가 많은 방송과 신문들도 9일 오후 내내 트럼프의 발언을 부각시켰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총기 소유자들에게 판사들 혹은 현직 대통령을 향해 그들의 무기를 사용하라고 선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 외 다른 행동을 부추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해석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클린턴에 맞서 수정헌법 2조 지지자들이 스스로 행동을 취할 수 있음을 제안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트럼프는 이날 저녁 TV에 출연해 "내 발언은 총기 권리 운동의 파워를 언급한 것이지 다른 어떤 해석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도 이날 유세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수정헌법 2조 지지자들에게 '관련 법률이 폐지되지 않도록 집단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며 "그런데 그들(클린턴과 언론)이 교묘하게 발언을 왜곡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CNN은 "이날 논란은 원고 없이 쏟아내는 트럼프 스타일이 이제는 그에게 '정치적 두통거리'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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