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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자유가 그리웠다.|영화인들이 말하는 최-신부부 탈출 동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은희·신상옥부부는 왜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을까.
창작과 예술의 자유를 향한 목타는 갈구, 60을 넘어선 인간의 어쩔수 없는 수구초심이 가장 절박한 탈출동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북한의 지원으로 차렸던 오스트리아 빈소재 신필름 사무실이 두사람의 탈출전 최근 폐쇄된 사실이 밝혀졌고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촬영기등 구입에 5백여만달러의 빚을 졌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신필름운영과 관련한 보다 절박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유력해지고 있다.
현실을 운명으로 체념하기가 더 쉬운 60대 영화인부부의 운명을 다시 뒤바꾼 필사탈출 동기는 과연 어느쪽일까.
◇좌절=지난달 14∼15일 베를린영화제에서 두사람을 만났던 우리측 영화인들은 두사람이 북쪽에서의 활동에 크게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것 같았다고 한결같이 말하고있다.
이들이 이처럼 좌절감에 빠진것은 그들이 북녘에서라도「사는 보람」 으로 여기고 몰두해온 영화 제작이 북한의 사상과 제도의 장벽에 부딪쳐 상상못할 어려움을 겪는데다 서방세계에선 「수준이하의 선전영화」 로 평가돼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딜레머에 빠진데서 비롯된것 같다는 풀이.
두사람을 잘 아는 국내의 영화인들은 『신씨는 피랍후 아마도 김정일을 자신의 영화제작뒷돈을 대는 「손큰 물주」로 보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상업적· 탐미적인 신씨의 취향과 공산이데올로기와는 생리적으로 맞지않아 일을 하면 할수록 한계와 좌절만 느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신필름운영 = 두사람의 보다 큰 좌절은 신필름 운영에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유력히 제기되고있다.
17일 오스트리아 주재북괴대사관은 빈의 AP통신사 지국에 성명서를 보내 『신씨가 영화 「칭기즈칸」 제작비로 책정된 3백만달러를 횡령할 목적으로 망명처를 구한다는 어릿광대놀음을 조작하고있다』고 주장했다.
신씨에 대한 의도적 중상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이같은 비난성명은 그러나 신씨 자신이 2월 베를린영화제서 만난 김지미씨에게 『김정일에게 4백만∼5백만달러 빚을 지고 있다』 고 말했던 것과 관련지어 볼때 적어도 신씨의 영화제작활동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부딪쳤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18일 빈의 신필름 사무실을 취재하러 갔던 본사 특파원은 북괴대사관과 5분거리에 있는 마리아힐퍼가 41번지 7층빌딩 3층에 세든 10평짜리 신필름 사무실이 두사람의 탈출전 최근에 폐쇄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사무실은 85년초 개설됐으나 간판만 걸었을 뿐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한달에 3∼4번쯤 북괴대사관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우편물을 찾아가고 월세를 냈으며 신씨부부등은 한번도 간 일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볼 때 북괴 김정일은 최· 신씨를 차례로 납치한뒤 두사람의 마음을 돌려 「국제적 수준과 감각」 의 북괴선전영화를 만드는데 자발·능동적으로 참여하게하고 대외선전을 목적으로 신필름을 차려주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의 빈 두 곳에 사무실을 내도록 한뒤 서독· 프랑스 등에서까지 영화제작 활동을 뒷받침해 왔으나 최근 더 이상의 이용가치가 없다고 보고 지원을 축소내지 철회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신병 = 최은희씨는 북에서 담석증수술을 받은뒤 건강이 나빠져 베를린서 김지미씨를 만난 2시간 동안도 영하에 가까운 쌀쌀한 실내에서 계속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으며 두사람 다 몰라보게 늙고 지친 표정이었다는 얘기에서도 두사람이 북녘생활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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