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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펀치 드렁크를 부르는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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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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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3번기 1국> ●·커제 9단 ○·스웨 9단

11보(147~159)=어쨌든 47로 느긋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백이 우변 급소를 찔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벗어났으나 그게 과연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복싱 용어 중 ‘펀치 드렁크(Punch Drunk)’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서 ‘잔매에 골병든다’는 뜻인데, 격렬하게 맞붙어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승부는 후유증이 적은 반면, 지금 이 대국처럼 무겁게 한걸음 한걸음씩 밀려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승부는 후유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단칼에 끝내지 않고 느긋하게 유리한 형세의 국면을 만끽하고 있는 커제의 태도는 발톱을 감춘 채 병든 듯 걷는 맹수의 잔혹함(?)일 수도 있겠다.

우변 50, 52로 밀어 올려 안정의 품을 넓혔으나 급소는 여전히 남았다. 53은 치명타는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통증을 안겨준다. 괴롭지만 54로 늦춰 받을 수밖에 없다. 스웨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여기서 발끈, ‘참고도’ 백1로 막아버리면 흑2, 4로 알기 쉽게 걸려든다. 백a는 흑b로 안 된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미덕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빠른 포기가 더 현명할 수도 있다. 55부터 59까지, 이렇게 당하고도 우변 백이 아직 살지 못한 형태라는 게 스웨의 고뇌. 그야말로 가슴에 칼을 꽂는 ‘인(忍)’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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