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냐 클린턴이냐…공화당 출신 전 국무장관들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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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으로서의 의리냐, 국무장관 출신자의 동지애를 택할 것인가.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8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공화당의 분열을 틈타 국무장관 출신의 '공화당 어른들'을 포섭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공식적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인지, 분위기를 떠보기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는 것이지만 이들의 클린턴 지지가 현실화될 경우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이미 공화당의 우상인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 참모 상당수는 클린턴 지지로 돌아선 상태다. 또 8일에는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네그로폰테 전 국무부 부장관, 로버트 졸릭 전 국무부 부장관 등 공화당 소속의 쟁쟁한 전직 국가안보 관료 50명이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의 인격·가치관·경험이 결여돼 있으며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미 역사상 가장 무모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연명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하지만 역시 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국무장관 역임자의 이반은 그 무게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공화당 정권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인사로 생존해 있는 이는 5명이다.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정권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조지 슐츠, 조지 HW 부시 정권의 제임스 베이커, 조지 W 부시 정권의 콜린 파월과 콘돌리자 라이스가 그들이다. 폴리티코는 "국무장관 출신자들은 일종의 '엘리트 클럽'으로, 공화당이건 민주당 출신이건 힘든 직무를 이겨 낸 서로를 의지하며 존경한다"며 "특히 클린턴은 역대 국무장관들과의 동지애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 키신저에게 '아시아 관여 정책'에 대한 자문을 폭넓게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폴리티코는 오마바 정부 관계자를 인용, "키신저의 클린턴 지지는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신문은 95세의 고령인 슐츠와 관련, "트럼프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않지만 클린턴에 대해선 예전부터 좋은 말들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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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의 경우 공개적으로 '반 트럼프'를 선언한 부시가와 각별한 관계다. 하지만 "베이커는 공화당의 오랜 기둥과 같은 존재여서 자기 당 후보를 버리는 행위는 '너무 멀리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활동적인 파월과 라이스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파월은 지난달 "난 아직 어느 한 후보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측근들은 "파월이 트럼프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때문에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마바 후보를 전격 지지 선언해 정가에 충격을 던졌던 파월이 이번에도 '클린턴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재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 중인 라이스는 당초 트럼프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가장 원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라이스는 일언지하에 제안을 일축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특히 러시아 전문가인 라이스는 트럼프가 공공연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강조하는 데 반감을 갖고 있다. 부시 패밀리와의 조율 하에 최종 입장 표명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티코는 "국무장관 출신 '공화당 어른'들이 '반 트럼프'를 공개 선언하거나 '클린턴 지지'를 밝힌다면 그 시기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선거일 직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당시 파월은 선거 2주일 전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들의 클린턴 지지가 별 도움이 안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가 "어차피 그들은 클린턴과 같은 부류의 워싱턴의 기성 정치권이다. 그래서 모두 이라크전에 찬성했다. 하지만 난 이라크전전에 반대했다"며 각을 세우고 차별화할 수 있는 명분만 준다는 것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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