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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2016] 여보도 힘내요, 먼저 웃은 주부 역사 윤진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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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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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뻤을까. 리우 올림픽 여자 역도 53㎏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낸 윤진희가 활짝 웃는 모습.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 인스타그램]

남편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했다. 긴장하는 표정을 지을 땐 덩달아 얼굴이 굳어졌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땐 함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시상대에 선 아내는 그런 남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보였다. 8년 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보다 한단계 낮은 동메달이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 해 더욱 값진 결과였다.

여자 역도 53㎏급 깜짝 동메달
은퇴 뒤 남편 재활 돕기위해 복귀
합계 199㎏ 들어 4위로 밀렸지만
1위 다투던 중국 선수 실격으로 3위
69㎏급 출전 4세 연하 남편 원정식
“참고 또 참으며 출전한 아내 대견”

‘주부 역사’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가 리우 올림픽 여자 역도 53㎏ 경기에서 기적을 들어올렸다. 윤진희는 8일 브라질 리우센트루 파빌리온2에서 끝난 경기에서 인상 88㎏, 용상 111㎏을 들어올려 합계 199㎏으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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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경기에서 힘차게 바벨을 들어올리는 윤진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 인스타그램]

역도는 외로운 운동이다. 사방이 4m인 경기장에서 바벨에만 집중한 채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윤진희는 그 외로운 과정이 싫어 2012년 바벨을 내려놨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은퇴해 대표팀 후배 원정식(26·고양시청)과 깜짝 결혼했다. 두 딸 라율(4), 라임(2)이를 낳은 그는 “올림픽 메달도 땄으니 미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진희의 은퇴로 한국 역도는 힘을 잃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남녀 10체급에 선수를 내보냈지만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해방 이후 올림픽 첫 메달(1948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김성집)을 딴 뒤 그동안 금3, 은4, 동4를 수확했던 효자 종목의 몰락이었다.

2013년 장미란(33)마저 은퇴하면서 여자 역도의 역사는 끊겼다. 남자 역도 역시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유일한 메달권으로 분류된 사재혁(31)이 후배 폭행 혐의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한국은 2012년 런던에서 한 국가 최대인 10장의 쿼터를 받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남녀 합쳐 7장(남자 4, 여자 3)을 받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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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동료이자 남편인 원정식에게 동메달을 걸어주는 윤진희.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 인스타그램]

윤진희는 지난 2014년 말 다시 바벨을 잡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 도중 큰 부상을 당한 남편 원정식(26·고양시청)이 “다시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윤진희는 “삶은 참 복잡하다. 그 때 남편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역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희의 두 어깨는 무거웠다. 한국 역도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를 악물었지만 3년의 공백은 컸다. 지난해에는 어깨 부상까지 당했다. 윤진희는 “부상 때문에 다시 포기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포기할 땐 하더라도 끝까지 좀 더 힘을 내보고 결정하면 좋겠다’고 말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윤진희는 당초 메달 후보가 아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94㎏, 용상 119㎏, 합계 213㎏으로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해 그의 세계랭킹은 25위였다.

윤진희는 인상 1차 시기에서 88kg을 들어올렸지만 2, 3차 시기에서 90kg을 연속 실패해 4위에 머물렀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운 리야쥔(중국)과는 13kg의 차이가 났다. 윤진희는 용상에서도 1차 시기에서 110kg를 실패한 뒤 3차 시기에서 111kg을 들어올려 4위권으로 밀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라이벌 쉬스칭(대만)과 금메달을 다투던 리야쥔이 용상에서 무리한 시도(123㎏-126㎏-126㎏)로 3번의 시기를 모두 실패하면서 윤진희가 기적같은 동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금메달은 인상 100㎏·용상 112㎏

으로 합계 212㎏을 든 쉬스칭이, 은메달은 인상 88㎏·용상 112㎏으로 200㎏을 기록한 디아즈 하이딜린(필리핀)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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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식-윤진희 부부의 두 딸인 라율(왼쪽)과 라임 자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진희 인스타그램]

8년 만에 시상대에 오른 윤진희의 감회는 남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뽀글거리는 단발머리에 앳된 얼굴로 미소지었던 스물 둘 윤진희는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서른 살 아줌마 역사로 시상대에 올랐다. 윤진희는 “6차 시기를 모두 성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잡았는데 인상에서 부진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더니 하늘이 메달을 주셨다”고 말했다.

윤진희는 시상식이 끝난 뒤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다가가 동메달을 목에 걸어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꼬옥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원정식은 “참고 또 참으면서 올림픽까지 출전한 아내가 대견하다. 이제 내 차례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고 말했다. 원정식은 10일 남자 69㎏급 경기에서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또 한 번의 기적에 도전한다.

리우=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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