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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신흥 경제대국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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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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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모여 열전에 들어갔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리우 올림픽은 브라질의 높은 경제 위상을 반영한다. 브라질은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1조8000억 달러로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이다.

브라질은 신흥 경제대국 그룹을 일컫는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일원이다. 이들은 총인구 29억 명으로 전 세계의 40%를 차지한다. 경제 규모는 전 세계 총생산(구매력 기준)의 30%가 넘는다. 아프리카의 선두 주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포함해 브릭스(BRICS)로 표기하기도 한다.

신흥국들은 ‘세계화의 황금시대’에 무역과 투자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유럽 경제가 침체되면서 신흥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신흥국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해 세계 경제의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에서 브릭스와 한국·호주·터키 등이 참여하는 ‘주요 20개국(G20)’으로 바뀌면서 신(新)국제질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2012년부터 신흥국 경제도 침체에 빠져들었다.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제 성적표는 최악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모두 마이너스 4%에 가깝고 브라질의 물가상승률은 9%, 러시아는 16%에 달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도 두 자리 숫자에서 6.9%로 낮아졌다. 선진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신흥국의 수출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원자재 값이 크게 하락하면서 브라질이나 러시아 같은 상품 수출국들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계속하면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져 ‘취약 5개국(터키·브라질·인도·남아공·인도네시아)’을 포함한 많은 신흥국이 금융 불안을 겪었다.

외부 충격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취약요인이 신흥국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브라질은 지도층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직무 정지 상태다. 인도는 재정적자가 많고 노동·토지 개혁에 진전이 없다. 중국은 기업 부채 문제가 심각하고 국유기업과 금융 개혁이 느리다. 러시아는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경제체질 개선이 쉽지 않다. 많은 신흥국에서 기업 규제가 심하고 정부가 다양한 이익집단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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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국제질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G20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에 무역 분쟁이 늘어나고 정치·군사 대립도 심해졌다. 러시아는 크리미아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고,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으로 주변 국가들과 대립했다.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은 계속되고 중동 정세는 매우 불안하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시진핑(習近平)과 푸틴이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했다. 미국·유럽·일본에서는 국수주의가 지지를 얻고 있다. 모든 강대국이 개방보다 고립으로 자국의 이익만을 좇으면서 세계의 리더가 없는 ‘G0’의 대혼란 시대로 들어섰다. 국제 분쟁과 대립은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흥국들의 앞날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섰다.

한국은 신흥 경제국의 선두 주자다. 경제 개발을 시작한 1962년부터 40년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경제력 순위는 세계 11위이고 수출 규모는 세계 5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가 넘는다. 중국·브라질·러시아는 소득이 1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인도는 겨우 1600달러 수준이다. 우리는 적은 인구로 정말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대혼란의 시대에 우리 국정의 두 중심축인 경제와 외교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저금리와 재정확대를 고수해도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 증가하는 민간 부채, 대외 변동에 취약한 경제구조, 심화되는 경제 불균형, 급속한 고령화 등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가 쌓였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신흥국 중 최초로 2010년 G20 의장국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다자 외교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과 양자 외교 관계도 순탄하지 않다. 남북 관계도 개선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많은 출자를 하고 얻어 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직도 잃었다.

이대로는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는 항상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위기에 기민하게 대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점점 잠재력을 잃어가고 있다. 국가의 리더십과 지배구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4년간 땀 흘려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 선수들처럼 정치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합심해 경제대국으로 다시 도약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