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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의 반사이익과 민족주의 사이에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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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18면

일러스트 강일구

폴란드는 최근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3.6% 늘어났으며 올해도 유사한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시장이 개선되면서 임금이 올랐고 이는 가계지출 증대로 이어졌다. 실업률은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정부는 자녀 부양 보조금을 도입하여 소비지출을 더욱 촉진하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Brexit) 결정으로 인한 여파로 글로벌 시장에 큰 충격이 가해졌지만, 폴란드와 유럽의 여타 이머징마켓은 브렉시트 결정으로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새롭게 무역 장벽이 생기면 영국에 위치한 제조업체들은 EU 회원이면서 유리한 조건과 저비용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폴란드·헝가리·체코 등의 국가들로 옮겨갈 수 있다. 반면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 진영의 반이민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영국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미래는 다소 불확실해졌다. 이런 노동자들이 매년 폴란드에 송금하는 규모가 대략 10억 달러(1조1000억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막후 실력자 카친스키 반국제화 움직임브렉시트가 초래할 잠재적 악영향으로 글로벌 교역과 전세계의 개혁 노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가 이끄는 우파 정당 ‘법과정의당(Law and Justice Party)’이 지난해 11월 집권하면서 폴란드의 정치적 환경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카친스키는 2010년 러시아 소몰렌스크 착륙 도중 비행기 사고로 고인이 된 전임 대통령의 일란성 쌍둥이 형이다. 폴란드 국민들은 국가의 독립과 정체성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방어적인데, 법과정의당의 집권 이후 이같은 민족주의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 브렉시트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의 부상은 폴란드만의 현상은 아니며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족주의 성향이 부상하게 되면 글로벌 교역이 후퇴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성장 지향적 정책과 민영화 같은 개혁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다.폴란드 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가 공식적인 정부 직책을 맡지 않고 있는 카친스키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회의론을 부추기고 이웃 국가들 및 이전 점령국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조장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새로운 정부 또한 미디어·정보기관·대법원에 대한 통제로 비난 받고 있다. 카친스키가 보이고 있는 공격적인 민족주의는 어린 시절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바르샤바 건물의 85%가 파괴됐고, 러시아의 억압과 공산주의 강요로 인한 두려움을 겪으며 자랐다. 그와 쌍둥이 동생은 자유노조 연대의 의장으로 폴란드의 공산당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레흐 바웬사와 일했던 경험이 있다. 쌍둥이 동생의 죽음은 여전히 그에게 큰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매주 토요일에, 그리고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 동생의 무덤을 찾아간다고 전해졌다.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은행·보험·에너지 부문의 기업 민영화 정책을 정부가 연기한 점에서 민족주의적 태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전에 폴란드 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 요인은 바로 민영화 효과였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현지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해 공공조달 법규를 개정했는데, 이는 다른 EU 회원국들이 우려할 만한 사안이 될 수 있다. 폴란드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석탄 채굴 부문을 보호하기 위해 탄소배출 관련 에너지 정책 또한 완화했다. 신용평가업체들, 신용전망 잇따라 하향 조정폴란드의 신정부는 은행 자산에 대한 새로운 세금과 스위스 프랑화 표시 대출 전환 프로그램을 도입해 정부 재정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스위스 프랑화 표시 대출을 폴란드 즐로티화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0만이 넘는 폴란드 가구가 스위스 프랑화 표시 대출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새로운 은행세 부과와 더불어 즐로티화 전환 프로그램은 은행 산업에 부담이 될 것이다.


수년 전에 주택 매입에 유리한 저금리 스위스 프랑화 표시 모기지 대출을 고객들에게 권하는 은행이 많았다. 당시 나는 이러한 대출이 실수라고 판단했으며 환율이 변할 경우 폴란드 즐로티화로만 수입이 있는 고객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예상한 대로 즐로티화의 가치가 스위스 프랑화에 비해 떨어져 수많은 주택보유자가 고통을 받았으며, 이자를 납부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집을 빼앗겼다. 따라서 모기지 대출 보유 대중에게 혜택을 주고, 은행이 통화 위험을 떠안도록 압박을 가하는 정부 정책이 인기를 얻었다.


폴란드에 투자하고 있는 나로서는 즐로티화 가치 상승이 우려할 만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유럽의 난민위기다. 이전 정부가 EU의 난민 재분배 할당에 의해 7000명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지만, 신정부는 이 합의에 상당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일하는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신용평가사 사이에 이런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올해 1월 S&P는 폴란드의 국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무디스는 5월에 장기 신용등급은 A2로 유지했지만 장기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반면 지난달 15일에 피치는 신용등급을 이전 수준과 동일한 A-로 유지했다. 피치는 양호한 GDP 수치에서 나타난 견고한 거시경제 펀더멘털을 강조했다. 또한 올해부터 2018년까지 민간 소비 확대로 연 평균 3.2~3.3%의 GDP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적 환경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투자자로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는 개별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올 봄 폴란드의 여러 기업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낙관적 견해를 갖게 하는 5가지 흥미로운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폴란드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속적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고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인해 성장, 글로벌 교역, 혁신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 폴란드는 현재 많은 도전에 직면해 어려운 시기에 있지만 투자자에게는 더욱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앞으로 폴란드에서 더 많은 잠재적 기회를 발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마크 모비우스템플턴 이머징마켓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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