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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에서 벗어난 것들을 허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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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9면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불안하다. 난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묵상에 잠겨 인생 전체를 빠르게 반성하곤 하는데 그런 시간은 오히려 감사히 여기는 편이다. 평균을 크게 웃도는 내 몸집이 문제다. 평균에 맞추어 만들어진 이코노미 좌석들이 회사마다, 그리고 비행기 기종마다 조금씩 다르다. 규격의 끝에 간당간당하게 걸려있다 보니, 혹시나 작은 차이 때문에 자리에 앉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되는 것이다. 널찍한 비즈니스 좌석이나 그 이상의 등급을 사용하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거니와 윤리적인 문제로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는 친구도 있는데, 그럴 마음은 전혀 없다.


간단한 해결법은 다이어트를 통한 감량인데,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다이어트와 몸만들기 열풍 속에서 삐딱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무얼 하기 싫을 때 대는 핑계인데, 다들 하는 것은 하기 싫다. 온갖 미디어에서 비만을 비난하다 이젠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개인의 대사질환에서 전염병 같은 위치로 처지는 더 나빠졌다. 짧은 기간에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우람하거나 섹시한 몸매를 완성한 사람들을 보면서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가소성이 크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사실, 이 몸집을 유지하는 것은 살을 빼는 노력을 하는 것만큼이나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다. 지하철에서 가능하면 앉지 않는다. 옆에 앉은 사람이 불편할까봐. 몸에 맞는 옷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비난의 눈초리를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들의 건강에 관심이 많은 노부모님의 걱정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내가 주변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평균치에 맞추려는 거대한 흐름에 대해서 여전히 온몸으로 저항하고 싶다. 산업화와 대량생산의 효율과 경제성의 대가로 지불한 개별성의 소멸. 그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복고 취미나 게으름 탓만은 아니다.


인간은 생물이고 생물의 개체들의 크기나 형질 등의 분포는 대체로 정규분포를 따른다. 정규분포는 평균값 근처에 개체들이 몰려있다는 말이다. 산업화가 시작되어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할 때, 이 평균값 근처의 제품들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평균값에서 먼 개체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려면 특별한 노력과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다. 그들을 고려한다면 비행기는 사람을 덜 실어야 하고, 의류공장은 라인을 늘려야 한다. 이윤은 줄어든다. 경제적 합리성을 따른다면 이러한 조치는 사회 구석구석, 모든 곳에서 관철되어야 한다. 대량생산의 고리에 들어 선 모든 것들은 표준화가 되어야 한다. 대량소비의 주체가 되든, 대상이 되든,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이다. 사과 한 알, 달걀 한 개도 표준에서 벗어나면 상품도 되지 않고 밀려난다. 표준에서 벗어난 성적이나 행동은 학생을 교육 시스템 바깥으로 밀어낸다. 대량생산의 미덕은 표준화를 통한 비용의 절감이 아니던가.


평균에서 먼 개체들의 고난은 대체로 시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집에서 옷을 지어 입던 시절이라면 수고를 누가 하든 몸에 맞는 옷을 지어 입었을 것이고, 두 발로 걸어 이동해야 하던 시절이었다면 몸에 맞지 않는 좌석 때문에 하는 고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선생을 찾을 수 있다면 둔재든, 영재든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평균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가 얻은 과실은 크지만, 그것이 뭉개버린 것들이 만든 그늘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어두운 현실은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평균을 벗어나 있는데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해결책은 돈이나 권력 밖에 없다는 것이다. 널찍한 일등석을 타고, 붐비는 지하철을 피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개인 과외 선생을 들이는 것들 모두 평균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낙오, 일탈, 혹은 배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소리 없이 소멸한다.


돌연변이는 평균에서 극단적으로 벗어난 경우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돌연변이들은 스스로 생존하지도 못하고 자손을 남기지도 못한다. 하지만, 평균 주변에서 맴도는 어떤 생물 집단을 지켜주고 보존해 주는 것이 돌연변이의 역할이다. 살아남은 돌연변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집단의 성공이나 번영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지금 지구상에 살아있는 꼬리 없는 대형 영장류는 오랑우탄·고릴라·침팬지 그리고 인간이다. 유전적으로 보면 오랑우탄과 나머지 3종으로 나누어야 맞지만 털 없는 피부와 언어나 추상적 사고 능력 등을 기준으로 보면 인간과 나머지 3종으로 나누는 것이 맞다. 멸종 위기인 다른 대형 영장류와 달리 지구상에 번성한 인간의 장점은 커다란 뇌, 높은 번식력, 그리고 장수를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높은 체지방비율과 기초대사율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 때문에 인간은 요즈음, 처음 맞는 영양과잉의 시대에 비만이라는 부작용을 겪는다. 다른 영장류와 공유하는 성질들을 평균 안에만 가두어 놓았다면 이런 번영은 꿈도 구지 못했을 것이다. 평균에서 벗어난 것들을 허하라.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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