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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사드 해법 찾기, 미·중과 관료적 소통보다 전략대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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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국이 거칠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국 배치에 대해 연일 공세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손사래를 치고, 인민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한국은 첫 번째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북한은 3일 올 들어 13번째, 29발째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것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 떨어뜨렸다. 바로 그날 오후 서울국제포럼에서 한승주(76) 전 외무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북·미 제네바합의(1994년 10월 21일) 무렵 외무부 장관(93년 2월~94년 12월)을 역임했다. 2003년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 2년간 주미대사를 맡았다.

한 전 장관의 말은 늘 차분하다. 질문을 하면 한 박자 쉰 뒤 또박또박 글씨를 쓰듯 대답을 한다. 자극적이지 않은 표현을 골라 쓰면서도 상황에 대한 인식과 메시지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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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3일 “사드 배치에는 명분과 이유가 있는데 중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할 것을 못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사드 배치의 후폭풍이 너무 큽니다.
“제가 알기로 사드는 패트리엇 미사일을 보완하는 방어 미사일입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스커드와 무수단 미사일로 우리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다차원적인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일부 반대하는 분들을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데 주력해야 하겠으나 사드 배치 자체를 취소해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방어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의 안전과 보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제입니다.”
중국 반대는 극복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강력히 반대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해상·위성 레이더 능력으로 중국의 미사일 배치와 능력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한해협 건너 일본 교가미사키와 샤리키에 있는 X밴드 레이더로 중국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인내심 있게 설득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기존 균형을 흔들려는 중국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중국은 지금까지 20세기 초반에 상당히 위축되고 일본·서양의 핍박을 받아 왔기 때문에 다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까지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해서 ‘나서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90년대를 지나 특히 21세기에 와서 국토 회복이나 위신 회복, 이런 걸 확보하겠다며 힘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패권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의 패권은 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최소한 다른 나라, 즉 미국의 패권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중국의 반발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동북아에서 사드로 긴장을 일으킨다든지 북한 핵무기를 허용한다든지 조장하는 것은 자기들에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자제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충분한 명분과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할 것을 못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유도탄을 발사하는 것은 사드 배치 명분을 강화해줍니다.”

중국의 보복을 걱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 핵을 막는다든지 우리와 교역을 한다든지 이런 것은 우리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고, 다 자기들이 필요해서 하는 겁니다. 중국은 자기 국익에도 위배되는 경제 보복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드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데 적극적으로 공조해야 합니다. 사드 문제로 여기에 협력하지 않으면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됩니다. 중국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에는 악재 아닌가요.
“중국에서는 그동안 한반도 통일과 자기들의 이해 관계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엔 우리나 미국과 정부 차원에서가 아닌 1.5트랙 차원에서 상당히 논의를 하고, 남한 주도의 통일을 전제로 해서도 많이 협의했습니다. 상당히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미국과 문제가 많이 생겨 계산법이 조금 달라질 수는 있는 거죠. 궁극적으로 보면 사드 배치나 한·미 동맹 강화, 이 모든 것이 북한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된다면 우리로서도 훨씬 더 중국과의 협조관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지금까지 경색국면 타개가 어려웠던 것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 정부는 북한이 당장 핵을 완전히 포기해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의 대통령 임기 말이 가까워 옴에 따라 커다란 상황 변화를 기대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
“북한의 핵을 허용하지 않고, 방관하지 않으면서 계속 대화라든지 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목표(북한의 비핵화)는 유지하면서 타협의 방법(formula)을 찾는 거죠. 우리가 지금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선은 북한이 비핵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약속으로나 실제 행동으로나 보이는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100 아니면 0이다’는 것보다는 어떤 중간 차원에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정부의 능력과 아이디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중국과의 지속적 협조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사드 배치 발표 일주일 전에 황교안 총리가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을 때 중국 측 발표는 전혀 눈치를 못 챈 뉘앙스였습니다. 중국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 면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계획이 있었으면 사실 총리도 정상 차원인데 그런 계제를 만들었다는 건 잘못한 일이겠죠. 그 시점에 정상회담이 있었다고 하면 그건 좀 다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부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간적으로 길게 봐야 하는 것이고, 올해 남은 기간 동안은 미국엔 선거가 있고… 객관적으로 보면 사드 배치가 중국 안보에 그렇게 위협이 될 만한 게 아닌데 중국이 왜 저렇게 강하게 나오느냐, 보통 우리가 얘기하는 대로 한·미·일 삼국동맹이나 미사일 방어 체제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내재적 다른 사정이 있는지, 예를 들면 시진핑이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군부의 의견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올해 우리가 새로 이니셔티브를 쥔다고 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 정부에 주문을 했다.

“시간을 좀 길게 봐서 앞으로 2~3년, 특히 앞으로 들어오는 정부에서 생각해야 될 것은 미국과도 그렇고, 중국과도 그렇고 전략적인 대화입니다. 사실 정상 차원에서 잠깐 만났을 때 대화한다기보다 정상회담 하기까진 사전에 협의가 있지 않습니까. 과거 미국과 중국이 관계를 정상화할 때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중국에 가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만나 전략대화를 했다든지 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예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과 같은 레벨이나 같은 성격은 아닐지 몰라도 완전히 관료적인 차원의 소통보다는 양쪽에서 얘기할 수 있는 비중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용 인력을 모두 동원해야겠네요.
“그렇죠. 내가 정부에 있을 때도 첸치천(錢其琛) 당시 중국 외교부장을 열 번을 만났거든요. 그때마다 상당히 깊은 얘길 많이 했습니다. 그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훨씬 더 그런 걸 하기가 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S BOX] “미국 대선 누가 당선되든 한·미 동맹에 파국 안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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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왼쪽)이 1993년 7월 한국을 찾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한승주 전 장관은 클린턴 가족과 인연이 깊다. 그가 외무부 장관이 된 1993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방한했다. 부인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힐러리 클린턴을 안내했다.

“미국 사는 아들이 그때 사진을 좀 보내달라더니 페이스북에 올려 돌렸대요. 트럼프가 당선되면 큰일난다고. 거긴 힐러리가 예쁘게 나와 있어 반응이 좋았답니다.”

그는 미국 대선을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가장 우려되는 상황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상식과 합리성으로 보면 당선되기 어려운 후보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당선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못 지키는 것 같아요. 과거엔 그렇게 해서 재미를 좀 봤는데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족 비난하고 그러니까, 그건 사람들이 곱게 봐주지 않거든요.”

한·미 관계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미국에는 대통령의 극단적인 정책이나 독단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돼 있습니다. 공화당 후보가 당선돼도 동맹이나 외교관계에 파국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동맹은 서로 필요하고 이해관계가 있어 체결하고 유지하는 겁니다.”
트럼프의 부상이 고립주의와 관계가 있나요.
“미국에서는 과거 중국을 봉쇄하느냐, 연결을 확대하느냐(engagement) 하는 논쟁이 있다가 일단은 봉쇄는 아니라는 쪽으로 갔습니다. 지금도 양 정당이 다 그 정책을 지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중국 정책을 취하는 쪽은 무역 역조와 일자리에 대해 우려하지만 고립주의는 아닙니다. 어느 당이 집권하든 지금과 같은 국제주의를 계속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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