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마르코스 잔재의 청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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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코라손·아키노」의 필리핀 신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경제재건·정치범석방·해외도피재산 조사 및 반환협상을 벌이는 등「마르코스」20년의 잔재청산에 나섬으로써 그 동안 쌓여왔던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을 해소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있다.
「마르코스」정권이 남긴 병폐는 정부와 사회곳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체는 바로 정치부재현상과 경제파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친족 및 측근들이 정권의 핵심부분을 틀어쥐고 있음으로써 빚어진 족벌정치, 정적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군부 및 사법부의 정치도구화 등이「마르코스」정권을 지탱해 온 근간이었으며 이로 인한 국민들의 정치불신의 풍조가 나라전체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코라손」정부의 고민은 그러나 갇혀 있던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정치적 갈등이 모두 해소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오랜 옥고에서 풀려난 정치범들은「마르코스」정부에서 인권탄압의 선봉장 역할을 하던 군부가 새 정부에서도 그대로 눌러 앉아 주요 직책을 떠맡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서「코라손」의 국민대화합정책에 첫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일부 언론은「코라손」의 대통령취임 합법성여부를 공격하고 나섰고 수감중인 공산지도자 석방문제로「엔릴레」국방상과 마찰을 빚었다. 한편「마르코스」에 계속 충성하는 일단의 군인들이 지방에서『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투쟁을 다짐하는가 하면 대통령령에 의해 해임된「마르코스」파 판사·시장 및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자신들의 임기를 내세워 명령에 따르지 않는 등 적지 않은 문제들이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사법부 주변에서도 같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코라손」정부이후 최초의 반정부 시위가 지난달 28일 대법원 앞에서 벌어진 것.1백여 명의 군중들은『유임된 대법원판사들은 물러나라』며 항의했다.「코라손」대통령의 국민화합정책이 벌써부터「마르코스」에 대한 원한을 풀지 못한 일부 과격한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마르코스」폭정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현재 수감중인 정치범 4백∼5백 명이 모두 풀려 나온다면「코라손」정부에 새로운 불안을 조성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더구나「마르코스」정권의 군부는 이들 정치법들이 대부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한바 있어 「코라손」이 약속한 대로 NPA(신인민군)·NDF(민족민주전선)등 CPP(필리핀 공산당)세력이 정치권 내에 수용되어 합법적인 정치단체로 활동을 개시할 경우 자칫「코라손」정부에 가장 강력한 도전세력으로 부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범 석방 등의 처리문제는「코라손」정부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마르코스」잔재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마르코스」크로니(측근)에 대한 처리.
「코라손」대통령은「이멜다」여사가 차지하고있던 주거환경 상 자리가 위인설관 이었다며 새 내각에서 직책자체를 없애는 등 과감한 정부개편을 하고 있으나 국민들 가운데는 군부봉기를 주도한 두 인물, 즉「엔릴레」국방상과「라모스」군 참모총장 또한「마르코스」와 함께 2O년간 필리핀을 통치하는데 가담해온 크로니의 일부라고 지적, 특히「엔릴레」에 대해서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이 일고있다.
민주화를 이루는데 이들의 공로가 컸던 것은 사실이나「마르코스」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해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직책은 새로운 사람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이 또한 정치범들의 반발 움직임과 함께「코라손」의 화합정책에 장애요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마르코스」의 경제 크로니 들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고 국내자본을 독점하는 동안 지방에서는 국민들의 생활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마닐라수도권 인구 8백만 명 가운데서도 1백만∼1백50만 명이 슬럼지역에 살고있으며 군 이등병과 경찰관의 월급은 6백∼7백 페소(2만7천∼3만1천 원),교사는1천1백 페소(5만원)로 살아간다.
농촌지역의 최저임금은 일당 32페소(1천5백원)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식구 모두가 직업전선에 나서야 생계유지가 가능한 실정이다.
이 같은 저임금문제가 시급히 개선되지 않을 경우저소득층을 배경으로 한 신인민군의 세력확장은「마르코스」때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농토가 없는 영세농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농지개혁과 국제가격하락으로 파탄에 빠져있는 원당·코코너트 등 주산물농업도 농촌의 빈민 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선결돼야할「마르코스」잔재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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