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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총리는 '아시아의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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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호주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에 참전한 데 이어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회의에 적극 참여하는 등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외교 행보를 판박이처럼 따라 걷고 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왜 아시아의 '부시'를 자처하는 걸까.

◆"부시와 닮은꼴"=하워드 총리는 지난 2일 한국.일본.필리핀 순방을 앞두고 한 민간 정책연구기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불량국가(rogue state)와 정정혼란 국가(failed state) 문제 해결에 외교 정책의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이 사용했던 '불량국가' 용어를 그대로 연설에 사용했다. '정정혼란 국가'는 최근 호주가 파병을 결정한 솔로몬 제도 등 정정 불안이 계속되는 남태평양과 인도양의 작은 섬 나라들을 가리킨다.

하워드 총리는 "테러가 성행하는 이 시대에 방관자적(retreat) 정책은 호주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이 "유엔이 움직이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나서겠다"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워드 총리의 보수 성향도 부시 행정부와 비슷하다. 그는 2001년 노르웨이 선박을 타고 호주 해안에 접근했던 난민 4백여명의 입국을 불허했다. 그러나 그의 보수적인 난민 정책은 호주의 '황화(黃化:황인종의 주류화)'를 우려하는 다수 호주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BBC는 전한다.

◆"미국과의 연대가 국익"=하워드 총리는 지난 4월 호주 언론과의 회견에서 "미국과의 연대는 호주 안보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호주 외교정책의 변화는 9.11테러 이후 만들어지는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과 정책 기조를 함께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동남아와 남태평양에서 미국의 군사적 전진기지로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호주의 장기적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호주는 이미 해외미군의 주둔기지로 거론되고 있다. 잘만 하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제치고 미국의 최대 우방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멀리 인도를 거쳐 중동까지 미국의 '대리인'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외교.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여건까지 갖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와 대테러전에서 미국의 대변인으로서 나섰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군사연구소 스트랫포는 "미국의 대테러전과 북핵 견제는 결과적으로 동남아에서 이슬람 세력의 등장을 막아 호주의 안보를 증대시키고, 동시에 호주의 주요 무역국인 동아시아 지역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다"며 "이런 면에서 호주와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지난달 보고서에 분석했다.

◆보이지 않는 견제=프랑스는 지난 2일 "호주가 파병을 결정한 솔로몬 제도에 프랑스도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뉴칼레도니아와 폴리네시아 등 여전히 프랑스령이 남아 있는 이 지역 일대에 호주 입김이 강화되는 데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호주의 뒤에 버티고 있는 미국을 의식, 외교를 통한 항의는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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