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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되지 않은 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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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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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디지털담당

이화여대 사태의 쟁점은 다층적이다. 소통, 학문, 직업, 대학 재정, 학벌 사회…. 쟁점만큼이나 생각이 머문 곳은 노래다. 지난 토요일 1600명의 경찰과 대치한 이대생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최소 아침이슬 아니겠나’라고 짐작한다면 크게 헛짚었다.

불안감이 최고에 달한 순간 이들이 선택한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히트곡이고, 단 한 번도 사회적인 의미로 해석된 적이 없는 노래다. 이들이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간명하다.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이란 달콤한 가사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같은 의미 부여 가능한 가사가 있는 점이 고려됐다. 민중가요의 당파성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다.

이화여대 사태에 대한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민중가요 한 곡을 함께 부르지 못할 만큼 개별화된 개인 수백 명이 어떻게 한 곳에 모일 수 있을까. 심지어 경찰에 맞서 스크럼까지 짤 수 있었을까. 조직화되지 않은 조직의 행동 양식은 조직된 단체와 달랐다. 이대생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누군지 알 수 있는 사진은 삭제해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했다. 대부분 ‘강제 진압’을 부각할 수도 있는 사진이어서 조직이라면 더 확산하고 싶었을 사진이었다. 그러나 이대생들은 참여자 개인 신상에 대해 강력한 보호막을 쳤다. 학생증이 있어야 출입할 수 있었던 농성장, 모자와 선글라스·마스크를 낀 채 진행된 기자회견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되지 않은 조직은 신촌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2011년 뉴욕을 덮친 월가 점령(Occupy) 시위도 닮은 꼴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제안→일부의 참여→경찰의 진압→이슈의 확산’이라는 경로도 같다. 여론조사업체와 언론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맞히지 못하고, 4·13 총선 결과를 헛짚은 것도 조직되지 않은 조직을 간과해서다. 트럼프 현상 역시 전통적인 정치 세력과 거리가 있다.

조직되지 않은 조직을 이해할 실마리는 있다. 따로 놀던 개인이 모이지만, 그 중심에는 ‘우리’가 아닌 ‘내’가 있다. 조직의 근저에 이념이 있다면, 조직되지 않은 조직의 근저에는 이익이 있다. 속물이라는 게 아니다. 행동에 나설 만큼 절박하고 현실적인 이유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점령 시위는 일자리가 촉발했다. 이대 사태의 확산은 ‘이대 출신’이란 개인 정체성의 위기에 힘입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상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빈도다. 조직되지 않은 조직의 형성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는 것 말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는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자꾸 만들어 내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자꾸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걱정이고 두렵다.

김영훈 디지털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