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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금융관료 '회전문 인사'논란…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시티그룹으로

중앙일보

입력

한국 금융계에 ‘낙하산 인사’가 있다면 미국과 영국 등엔 ‘회전문 인사’가 있다.

은행 고임금 비판했던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는 시티그룹으로
퇴임 직후 손수 차 몰고 연구소 출근했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핌코·시타델서 '투 잡'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곤욕을 치렀던 미국·유럽권 금융관료와 중앙은행 총재들이 퇴임 후 금융위기에 책임이 큰 대형 금융사에 둥지를 트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이해 상충을 지적하는 비판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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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파이낸셜타임스(FT)는 머빈 킹 전 영란은행(BOE·Bank of England) 총재가 지난 4월부터 시티그룹의 선임고문(senior adviser)로 영입돼 근무하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행보는 킹 전 총재가 그동안 은행 등 민간 금융권을 철저히 무시해 왔던 인사라는 점에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영란은행 총재를 지내는 동안 줄곧 은행가들을 “무능하고 탐욕스럽다(incompetent and greedy)”고 비판해왔다.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엔 의회 위원회에서 “은행가들에게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막대한 돈이 지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08년엔 시티그룹을 꼭 집어 “너무 많은 우수한 졸업생들이 좀더 가치있는 직장이 아닌 시티그룹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 시티행을 택한 당사자가 된 셈이다.

이달 초엔 주제 마누엘 바호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고위 간부로 영입되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의 모국인 포르투갈은 물론 프랑스 등 유럽지역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바호주 전 집행위원장은 지난 2002~2004년 포르투갈 총리를 지낸 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EU집행위원장직을 맡아왔다. 골드먼삭스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투자은행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9일 바호주 전 집행위원장에 대해 ‘수치를 모른다’, ‘품위를 상실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

영국에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의 고문으로 영입된 전례가 있다. FT에 따르면 블레어 전 총리는 2008년 JP모건에 합류하면서 무려 연봉 200만 파운드(약 30억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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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2014년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서 퇴임 직후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으로 첫 출근하면서 직접 자동차를 모는 소탈한 면모를 보였던 벤 버냉키 전 Fed 의장도 결국 회전문을 탔다. 그는 2015년 헤지펀드 시타델에 자문역으로 취업한 뒤 2주 만에 세계 최대 채권투자사인 핌코의 자문을 맡으며 ‘투잡(two jobs)’을 뛰었다. 그가 자문역으로 받는 돈의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회 강연료가 의장 보수에 맞먹는 20만 달러(약 2억2300만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밥 젠킨스 전 영란은행 금융정책위원회 위원은 금융관료들의 민간금융사 행에 대해 “실제로 존재하고 인지할 수 있는 이해상충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회전문 인사가 금융관료의 전문성을 살리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금융당국과 금융가 간 유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젠킨스 전 위원은 “기득권이나 지배계층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가 극도로 낮은 상황인 만큼 정부가 이 이슈를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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