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칼럼

금수저론을 제친 금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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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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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 4학년

동갑내기 친척은 2년 전만 해도 취미 반 꿈 반으로 복싱을 했다. 국가대표 선발대회까지 출전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하지만 예선전에서 두드려 맞아 턱이 나간 뒤 그만뒀다.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싸움 잘해 좋겠다. 누가 건드려도 자신 있잖아.” 대답이 의외였다. “운동을 배우니까 무서워서 못 싸운다”고 했다. 얻어맞는 게 무서웠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동네 친구가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한 번 스파링을 같이 뛰었다고 한다. 친척은 뻔히 보이는 주먹을 슬슬 피해 가며 상대의 턱에 한 방, 배에 한 방씩 먹였다. ‘툭툭’ 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친구는 일주일 내내 배를 부여잡고 다녔다. 당황하고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고 그때부터 싸움이 무서운 줄 알았다는 게 친척의 얘기였다.

금수저론은 이제 한물갔다. 이제는 ‘금수(禽獸)론’이 대세다. 자본과 노동으로 사람을 나누더니 이제는 권력으로 사람을 나눈다. 고위 공직자가 서슴없이 ‘대중은 개·돼지’라고 했다. 힘센 검사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비리사건이 한창이다. 내 밥은 내 손으로 수저 없이 먹겠다고 금수저론을 물리치던 나도 금수론은 반박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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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권력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힘을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신중함은 자기 힘을 무서워하는 데서 시작된다. 무서움은 그 힘이 얼마나 세냐 약하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힘에 당해 본 사람이 무서움을 아는 것도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 무서워할 수 있다. 친척의 경험에서처럼 자기가 아끼고 좋아하는 대상이 자기 힘에 다치게 될까 하는 마음에서 무서움이 잉태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기 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금수론을 주창한 그 공무원은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120억원의 주식 뇌물을 받았다는 검사는 행동으로 금수론을 실천해 왔다. 사랑은 경쟁에서 싹트지 않는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내 친척의 턱을 날려 버린 선수는 싸움이 무섭다고 생각했을까? 흠씬 맞고 낙오한 상대를 보며 우월감을 느꼈을 게다. 네가 쓰러지지 않으면 내가 낙오되는 상황에서는 사랑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학교를 봐도, 사회를 봐도 온통 경쟁뿐이다. 대입이나 채용 과정도 복싱 경기와 다를 바 없다.

친척이 사랑하는 오랜 동네 친구는 경쟁으로 얻은 게 아니다. 같이 웃고 울던 시간이 동네 친구를 선물했을 뿐이다. 이쯤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뭣이 중헌디!’

최재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