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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케이스 되지 말자” 매뉴얼 만드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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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란법 합헌’ 소식이 알려지자 유통·외식업계는 울상이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이가 400만 명에 달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불가피해서다.

아파트 옆 골프장 촬영 주의령도
권익위, 9월 직접 설명회 갖기로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와 현대백화점은 명절 특수에 대비,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 물량을 지난해보다 20~30% 늘렸다. 법 시행 전이지만 미리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내부에서조차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 매출 하락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선물세트의 주력 상품군은 20만~30만원대인데 5만원 이하로 상품을 다양화하려 해도 그 가격으로 마땅한 상품을 내놓기 어렵다”며 “사실상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간 내부에서 상품군 구성을 놓고 몇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딱히 나온 해결책은 없었다”며 “단일한 도매상을 통해 공동구매 형태로 단가를 내리는 방안 정도를 협력사들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김영란법의 수혜 기업이 생길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5만원 이하 선물세트는 참치나 식재료·세제 같은 생필품 정도”라며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백화점과 달리 생필품을 만드는 일부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업계는 규모에 따라 시각차가 있었다.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3만원 식사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수준이라 따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고가 식단은 나름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저가호텔은 다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의 한 비즈니스호텔 관계자는 “4만원대 식사를 3만원 미만으로 조정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법 시행이 확정된 만큼 구체적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청·언론과 접촉이 많은 대기업은 ‘김영란법 합헌’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직원 행동요령 같은 매뉴얼을 만들고 싶어도 예외 상황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시행일까지 남은 두 달간 법무팀과 함께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교육시키는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도 “권익위에서 설명집을 제작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토대로 법무팀과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임직원들에게 “시행 초기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라”는 지침도 내리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초로 적발되면 ‘낙인 효과’가 커 유사 위법행위가 보도될 때마다 끊임없이 거론될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혹시 골프를 칠 일이 생겨도 망원렌즈 설치가 가능한 아파트단지 인근 골프장은 기피하라는 웃지 못할 권장사항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각 경제단체는 자주 설명회를 열어 기업 대응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앞서 지난 20일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합동법률사무소 김앤장이 김영란법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9월 중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권익위의 기업 대상 설명회가 열린다. 한 관계자는 “ 대상이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요소가 많아 9월 예정된 설명회에 관계자들이 대거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합헌 결정과 관련해 기업 문의가 폭주하자 법무법인 화우는 ‘부패방지TF’를 공식 출범시켰다. 양호승 대표변호사를 TF팀장으로 반부패 컴플라이언스팀, 법제컨설팅, 준법 감시, 형사 대응 분야, 헬스케어, 건설 등 전문 분야별 기업 자문 변호사 15명으로 구성해 출범했다.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법률 자문은 벌써 시작했다고 한다.

박태희·전영선·장주영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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