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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고라니로 홍역치른 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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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중앙포토]

지난 27일 오후 9시 무렵. 중동부 전선 모부대에 비상이 걸렸다.

전방의 철책을 지키고 있던 관측병의 보고 때문이었다. 이 병사는 인근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총을 겨눴다. 동시에 열상감시장비(TOD)에도 뭔가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군에선 ‘열점’이라 부르는 붉은색 점이 장비에 나타난 것이다. 군 관계자는 “전방지역의 과학화 감시 장비 시스템을 도입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며 “기상이 좋지 않거나 야간에는 주변의 온도와 다른 물체가 나타났을 경우 붉은색 점으로 표시돼 이럴 경우 북한군의 귀순이나 침투가 의심되기 때문에 상황조치에 나선다”고 말했다.

이 부대는 즉각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보고는 군사령부를 거쳐 합동참모본부 상황실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됐다. 상황이 발생한지 10여분만에 육군 본부에도 전파가 됐다.

군은 즉각 대응조치에 나섰다. 해당 부대는 철책점검과 함께 사전에 약속된 진지에 병사들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후방부대들도 증원 준비에 나섰다. 실전이었다. 일각에선 “북한군의 침투가 발생했다”“철책이 뚫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보고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상황전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본지 확인결과 상황전파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상황도 2시간여 뒤 끝났다. 비무장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고라니의 출현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면서다. 군 당국은 동이 트자 곧바로 해당지역에 수색병력을 보내 간밤의 상황을 다시 점검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청음(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던)지역에서 어제(27일) 밤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고라니 발자국을 발견했다”며 “최종적으로 고라니의 움직임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고라니로 인해 전방지역 부대가 간밤에 때아닌 홍역을 치른 셈이다.

이같은 상황은 전방지역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먹거리를 찾아 고라니와 노루 등 야생동물들이 야간에 이동하는 경우가 수시로 있어서다. 동물들의 움직임이 인기척처럼 느껴져 매번 부대는 다르더라도 비상이 걸리기 일쑤다. 인적이 드물다보니 개체수도 늘고 있다. 전방 지역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전역한 예비역 장교는 “민간인 통제선 이북, 특히 철책에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기 때문에 수풀들이 스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며 “야간에는 야생동물들의 움직임이 인기척처럼 들려 적군으로 오인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말했다.

군은 최근 전방지역에 고성능 카메라와 첨단 감시장비를 투입해 경비를 과학화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병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비해 수년전부터 과학화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돼 과학화 시스템을 갖췄다”며 “비록 동물들의 움직임이라도 비상이 걸리면 북한군이 아니라는 최종 결론이 날때까지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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