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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40년…정신문화가 시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리의 말과 우리의 콤플렉스. 해방 40년을 보낸 지금 우리말의 실태와 문화적 콤플렉스의 실상을 파헤친 학자들의 진단이 나와 주목을 끌고있다.(문학과 지성사 『해방40주년 민족지성의 회고와 전망』).

<「우리말의 실상」남경희 교수<이화여대>>
남경희교수 (이화여대·철학)는 말의 실태를 분석했다. 그는 『해방 40년의 현재는 한마디로 말의 부재시대요, 40세의 장년은 아직도 어눌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라는 어휘는 그 사용빈도에 비례해 우리의 공복감만을 더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어눌함과 공복감의원인은 권력에 의한 말의제한과 건전한 토론풍토의 부재및 말의 타락.
말이 부재하는 사회는 비합리성과 반이성에로 치달을수밖에 없으며 아직도 목소리 큰 녀석이 이긴다는 식의 힘의 논리가 무성하다.
우리 조상들은 『말로써 말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고 읊음으로써 말의 세계에서도 그레샴의 법칙이 통한다는 지당하신 원리를 통찰한 바 있는데 그래도 우리 조상들은 나은 편이었다.
지금 이 사회는 말답지못한 말들이 말다운 말을 구축하는 정도가 아니라 말 잘못 했다가는 큰코 다치는 수도 있으니 이제 말은 단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할것은 말 많은 사회. 말다운 말이 풍성한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닐까하는 점이다. 고대 아테네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말의 논리의 부재는 말의타락을 가져오고 말의 타락은 그 사회에 불신을 심어준다. 정치와 광고, 그리고 근자엔 종교까지도 이러한 말의 타락에 기여하고 있다. 정치는 어휘의 의미를 끊임없이 왜곡시켜 의미의 2중가격을 형성시키고 광고는 언어의 인플레를 급속도로 조장시켜 우리 정신세계의 화폐인 낱말들을 수시로 평가절하시키고 있다. 종교는 우리 내면세계와 초월세계에로의 창을 여는 코드 어휘들을 남발해 이제 더이상 우리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남교수는 『한국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바는 삶의 질을 향상하는 협동체로서의 한국사회』라고 주장하고 『그러기 위해선 공유의 정신적 공감대, 즉 가치관의 형성이 필요하며 그필수적 요건은 말의 자유』라고 지적했다.

<「외국문화 콤플렉스」이인호교수<서울대>>
이인호교수 (서울대 역사학)는 『우리 모두의 심리속에 가장 깊숙이, 그리고 끈질기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외국문화에 대한콤플렉스』라면서 그 실체를 추적했다. 그는 콤플렉스의 요인으로 우리가 겪어야 했던 3대 충격을 들었다.
즉 강요된 개항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에 이은 분단및 냉전체제로의 흡입.
이상의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정치적 위기못지않은 문화적 자아상실의 위기를 겪게 했으며 외국문화에 대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히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야만으로 여겨졌던 일본이 중국을 물리치고 한반도의 지배권을 주장했고 해적쯤으로 여겨졌던 미국에 개화와 자강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수 없게된 역사적 현실은 우리에게 가치관의 근본적 혼란과 외국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이미싹트기 시작한 우리의 외국문화 콤플렉스에 적개심과 열등의식의 배합이란 또다른 미묘한 채색을 가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해방후 빚어진 분단상황에서 유래됐다. 즉 어떤 가치체계가 어느 한쪽에서 체계화된것은 정치 힘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됐지 우리문화와의 어떤 내적 연관성 때문에 선택된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이교수는 지적한다. 해방당시 우리의 처지에 가장 적합한 체제란 어떤것이며 장구한 이상으로 삼아야 할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가 허용되지않은 상황에서 이미 모든 결정은 내려지고 수호돼야 했다. 그후 우리문화의 숨은문법은 「되면 된다」에서 「하면 된다」를 거쳐 「하면 한다」로 바뀌어온 것이다.
이교수는 우리가 이러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정치에 대한문화의 예속과 그 왜곡의 연속』을 들었다. 그 정치로부터 문화가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문화계내부의 모든 허구적 대립과 반목을 과감히 청산해야 하며 그 대전제는 지성을 바탕으로 한 공통된 언어의 사용이 될것이라 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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