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단체장들 정당 줄서기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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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외형상으로는 성숙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내용적 면에서 보면 우리의 지방자치는 핵심적 두 축인 주민참여(주민자치)와 행정분권(단체자치)을 배제한 채 '형식상의 중앙과 지방정부의 분리'및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지방정치인의 선출'이라는 껍데기 자치에 머물러 있다.

주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한 지방의원과 특히 단체장의 선출은 주민들의 서비스 행정에 대한 욕구, 지역 발전에 대한 욕구, 행정의 혁신과 투명성에 대한 욕구, 즉 주민의식을 높이며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역이 바뀌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 실시 이후 '풀뿌리 자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는 그치지 않는다. '주민 참여의식의 부족'이라는 점에서나 지방정치인들의 '자치 마인드 부재'라는 점에서나 그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단체장이 최고경영자(CEO)시장 등 갖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시장은 전이나 지금이나 정부의 통치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할 뿐이지 지방정부의 운영이 주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는 '자치 마인드'는 부족하다. 단체장이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뀌었을 뿐 '중앙집권적 통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당지배의 지방자치'다. 왜곡된 정당 제도 아래의 정당 공천제로 인해 과거에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던 것에서 이제는 공천권을 가진 정당 보스나 중앙정치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으로 지방이 바뀌었다.

특히 영.호남의 경우는 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들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을 선출직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임명직이라고 자조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이나 다름없어 지방선거에 공천권을 가진 중앙정치인이 지방정치인을 예속화하고 공천 비리나 각종 뇌물 사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지방의 문제에 깊이 관여해 각종 부조리와 부패의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특정 정당의 임명직 단체장들이나 지방의원들이 주민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한 정당지배의 지방자치는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의회 의장이 단체장을 겸하는 의원내각제형의 자치제도를 취하는 나라와 달리 집행부와 의회가 분리되는 형태를 취하는 나라에서 하나의 당이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지금처럼 철저하게 장악하는 것은 큰 문제다.

한국 지방자치의 문제는 이와 같이 첫째 주민참여에 의한 풀뿌리 자치가 실현되지 못한다는 점, 둘째 대부분 지방정치인의 자치 역량과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점, 셋째 정당의 당리당략과 중앙정치인들의 속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참여제도를 도입해 주민의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한시적으로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 지방정치가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의회와 단체장 선거는 분리 실시해 기초의원선거에서조차 특정번호의 후보가 70% 이상 당선되는 혼란을 없애고 서로 견제하는 투표가 가능해져야 한다.

지방자치정보센터에서 지난 4월 전국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 2백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중 주민평가제는 77%, 주민투표제는 73.7%, 주민소환제는 70.3%가 찬성했으며,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에 대해선 89%가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제 공은 중앙정치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지방정치 발전을 위한 국회의 양심을 기대한다.

민영창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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