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년 만에 손 맞잡은 북·중 외교수장…중국의 주도권 잡기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왕이(중국 외교부장·왼쪽)와 이용호(북한 외무상)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라오스 비엔티안을 찾은 북·중 외교수장이 2년 만에 손을 맞잡았다. 25일 낮 12시 쯤(현지시간)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중 외교장관회담에서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회담장에 들어선 것은 오전 11시59분. 뒤이어 12시1분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회담장에 들어섰다. 이 외무상은 회담장으로 이동하던 중 “중국과의 회담에서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요구할 것이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먼저 회담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왕부장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밖으로 나와 이용호와 악수하며 반겼다. 회담장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양 측 모두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띄었다. 이용호는 지난 11일 북·중 우호조약 체결 55주년을 기념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일 북한 노동당위원장에게 직접 축전을 보낸 데 감사를 표했다.

당초 회담은 오전 11시 시작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중·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논의되면서 당초 1시간보다 회의 시간이 길어졌다. 이에 따라 북·중 회담도 늦게 개최됐다.

북한과 중국은 ARF가 열리는 계기마다 거의 회담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및 장거리 로켓 발사 우려 등으로 관계가 경색되며 아예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이후 별도 계기의 한·중 외교장관 접촉도 없었다.

특히 이번에 중국은 북·중 회담을 알리기 위해 작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날 왕 부장과 이용호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을 출발해 쿤밍을 경유, 라오스에 도착했다. 6시간 30분 동안 함께 비행했다. 왕 부장은 도착 직후부터 이용호를 만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확답은 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긍정적인 내용의 답변을 했다.

회담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측은 이례적으로 한국 취재진 2명을 회담장에 들여보내줬다. 악수하는 장면과 양 측의 모두발언을 취재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었다. 제3국인 한국 취재진이 북·중 회담장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 왕 부장이 먼저 회담장에 가서 기다리고, 모두발언도 먼저 한 것은 주최측이 북한이 아닌 중국이란 뜻이다. 회담을 먼저 원한 것이 중국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이용호는 오전 10시36분 국립컨벤션센터에 도착해 왕 부장의 일정이 끝나길 기다렸다. 주최측이 회담장에 먼저 입장해 있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반발하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면서 동북아 정세가 격변하는 가운데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정부 안팎에선 나오고 있다. 전날 한·중외교장관회담에서 왕 부장은 “한국 측이 신뢰를 훼손했다”며 격렬한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비엔티안=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