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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싱턴의 킹 메이커 아니예요"|방한 워싱턴포스트지 그레이엄 회장에게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워싱턴=장두성특파원】워싱턴 포스트 지와 뉴스위크지의 사주요 회장인 「캐더린·그레이엄」여사(68)가 24일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75년에 이어 두 번 째 한국방문이 되는 이번 여행에는 「에드 미스턴」뉴스위크사장, 워싱턴 포스트의 주필인 「메그·그린필드」여사, 「짐·호글랜드」 외신담당 편집부국장 등 간부가 동행했다.
지난주 워싱턴 15가에 자리잡은 워싱턴 포스트 사 8층의 회장 집무실로 「그레이엄」회장을 찾아 이번 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무늬 없는 푸른 원피스를 입고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가 쓰는 것과 똑같은 철제책상과 값싼 소파가 방의 전체를 소박하게 비치게 했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무엇입니까?
『저는 l년 내지 1년 반만에 한번씩 관심 있는 지역을 여행하는 습관이 있어요. 지난해에도 브라질·아르헨티나·페루 등 남미를 순방했지요. 그런 여행을 통해 그곳 경제·정치상황을 알아보고 또 동행하는 언론인들은 앞으로 취재대상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경우는 마침 뉴스위크지 일어판 발간도 계기가 되어 겸사겸사 가게된 것입니다.』
「그레이엄」 여사가 외유 길에 나서면 부근 나라의 대통령과 수상 등 거물급들이 그녀와 만나기를 바란다.
그와 같은 인기는 워싱턴에서 그녀가 쌓아온 「막후 실력자」로서의 평판덕분이다. 「케네디」대통령 때부터 시작해서 「닉슨」한 사람을 빼고는 모든 대통령이 한번쯤 「그레이엄」여사의 조지타운저택을 방문, 식사를 하고 갔다.
그래서 워싱턴 사교계예서는 백악관만찬에 초대되는 것 다음으로는 「그레이엄」여사 집에 초대되는걸 탐한다. 최근 워싱터니언지는 「그레이엄」여사가 「낸시·레이건」여사와「샌드라·오코너」 대법원판사와 함께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레이엄」 여사 자신은 그런 평가에 대해 펄쩍 뛰면서 자신의 그런 이미지를 열심히 수정했다.
『내가 영향력 있는 인물이란 이야기는 난센스예요. 대통령들이 우리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뭐 영향력입니까? 「케네디」고 「존슨」이고 「포드」고 모두 대통령 되기 전부터 친하던 사람들 이예요. 「레이건」은 캘리포니아주지사 때부터 친구고요. 그들과의 관계는 「직업적 친분 관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영향력이 있다면 개인적이 아니라 워싱턴포스트와 뉴스위크지의 보도와 논평을 통해 나오는 것일텐데 그건 편집자들의 소관입니다.』
-하지만 여사가 워싱턴의 킹 메이커라는 평판은 널리 퍼져있지 않습니까?
『내 남편(63년에 자살한「필립·그레이엄」전 포스트발행인)은 그랬지요.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어요.
또 저는 정치에서는 완벽하게 떨어져 있어야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레이엄」여사는 71년 국방성 기밀문서를 포스트지가 정부의 압력을 무릅쓰고 보도했을 때와 72년 워터게이트사건 보도 때 외부압력에 굴하지 않는 「신문인의 고집」을 과시했다.
특히 워터게이트 때는 거의 두 달 동안 워싱턴 포스트가 단독으로 이 사건을 추적했으나 다른 신문들이 뒤쫓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포스튼 측은 불안한 독주를 했다.
행정부는 포스트사 소유의 TV방송국에 대한 면허를 경신해주지 않겠다고 압력을 넣었으며 「키신저」는 포스트 지가 『큰 실수를 하고있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법무부장관이었던 「존·미첼」은 『포스트가 계속 기사를 쓰면 「그레이엄」 여사의 젖꼭지를 빨래 짜는 틀에 끼워 돌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런 압력과 불안 속에서도 「그레이엄」 여사는 기자들을 계속 뒷받침해 주었다. 그 결과 「번스틴」과 「우드워드」기자가 퓰리처상을 타게 되었다. 이 상을 수상하던 날 두 기자와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나무로 만든 빨래 짜는 틀을 「그레이엄」 여사에게 선물했다. 그처럼 쥐어짜는 상황을 잘도 참아줘서 고맙다는 표시였다.
-워터게이트사건 보도는 미국 언론의 위력을 과시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언론의 역할에 대한 반발도 꽤 거세진 게 아닙니까?
『특히 외국에서 워터게이트 때의 포스트 지의 역할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대통령을 몰아냈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한 일은 「닉슨」이 사건을 은폐하려 할 때 계속 보도를 하려 한 것뿐이예요. 대통령을 몰아낸 것은 의회기능과 법 절차가 제대로 움직인 결과입니다. 언론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한 것이 아니예요.』
「그레이엄」 여사는 기사 하나 하나에 관여하지 않고 「편집의 독립성」을 고수해주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그레이엄」 여사는 남편이 사망한 63년부터 이제 24년째 워싱턴 포스트회사 회장직을 맡고있다. 그 기간동안에 그녀는 포스트 지를 판매실적 면에서 미국 7위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또 포천지가 매년 선정하는 미국 5백 대기업 중 3백4위의 자리를 굳혔다. 보너스까지 합쳐 연봉 54만7천 달러(약 5억원)를 받는 「그레이엄」여사는 5백 대기업 중에 드는 유일한 여회장이란 명예도 갖고있다.
그와 같은 경영상의 실적과 함께 그녀는 포스트를 퀄리티 페이퍼로 성장시킨 신문인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레이엄」여사는 한국이 성장과 부채라는 개도국의 이중 고통을 잘 해결해 나온 모델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한국방문중에 『비 경제, 비정치』분야의 작가, 창작 활동가, 지식인, 언론인 및 젊은이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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