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선발의 기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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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논술고사를 치르게된 목적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사지선다형 교육에만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사고력·창의력·표현력을 길러주는 것이고, 둘째는 학생 선발기능이 전혀 없는 대학에 부분적이나마 학생 선발의 재량권을 주자는 것이다.
13일 첫 논술고사를 치르고 나서 이에 대한 평가는 구구하다. 몇몇 대학의 출제는 예상과 상식의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지만 일부대학의 경우 지나치게 전문성을 띠고 있어 대입 수험생에게는 벅찬 논제였으며 고교생의 문장력 수준을 아는지 의문이란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도된 논술시험이 학생들의 폭넓은 사고력을 길러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반영률로만 보면 대학에 따라 다르지만 5∼3%에 불과하다. 이처럼 반영의 폭을 줄인 것은 학력고사 고득점자를 더 많이 확보하려는 계산 말고도 현실적으로 학과에 따라서는 1점의 차이가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입에서의 반영률이 어떻건 논술에 대한 수험생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제도 실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 일만 하다.
일부 대학의 출제가 무슨 박사학위 논문 같다는 일부 비판만 해도 일단 대학재량에 맡겨진 이상 용훼할 성질의 것이 아닐뿐더러 지엽적인 시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력고사+내신성적을 골격으로 한 현행 입시제도에 논술고사가 「변수」로 끼여든 것은 올해 입시의 경우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골격은 국가가 관리하고 있으면서 가지하나를 대학이 맡고 있는 꼴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어딘지 어설프고 짜임새가 없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눈치·배짱·요행히 판을 치는 현행 대입제도는 근본적으로 고쳐져야 한다는 소리는 이제 「국민적 합의」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교육개혁심의회의 결론도 그와 같은 방향에서 나지 않았는가.
대입의 국가관리가 결과적으로 반 교육적인 부작용과 모순만을 가중시킨 반면 대학자율에 맡겨진 논술고사가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얻은 이상 서둘러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한층 분명해졌다.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는 것이 그것이다.
원서마감 날에야 60%이상의 수험생이 원서를 들이민 눈치작전의 극치를 보고 내놓은 문교당국의 「대응책」은 한마디로 어이없다.
1인 1 원서제, 즉석 정정 방지, 지원상황의 발표 세분화, 학과별 커트라인 발표 등인 모양인데 과연 그런 땜질로 눈치 싸움이 사그러 들 걸로 보는지 딱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한심스러운 것은 어떤 문제건 행정력을 동원해서 막아보겠다는 편벽되고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이다.
입시창구의 눈치싸움은 제도의 산물인 것은 삼척동자들도 아는 사실이거늘 행정지시 한마디로 과연 실효를 거두면서 막아질 수 있다고 보는가.
오늘날 대학의 문제는 비단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사회, 이 나라의 고민이며 문제인 것이다. 입시제도를 비롯해서 대학이 안고 있는 숱한 난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궁극적으로 대학의 자율성 확보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도 물론·문제는 있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권이 고압적으로 개입하고 간섭해서 일으키는 부작용에 비해서는 하찮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가관리와 대학재량이 혼재하는 「얼치기」제도는 시급히 청산하고 「대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근본에서부터 입시제도는 다시 정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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