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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천하’ 터키 쿠데타, 시민들이 막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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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1 면

16일(현지시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지지자들이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스탄불 탁심 광장을 정부군이 지키고 있다. 이번 쿠데타로 한국시간 16일 오후 10시 현재 194명이 숨지고 1440명이 부상했다. [AP=뉴시스]

터키에서 15일(현지시간) 발생한 군부 쿠데타 시도가 6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쿠데타 발생 당시 터키 남서부 휴양지 마르마리스에서 휴가 중이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6일 오전 4시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국제공항으로 복귀해 “쿠데타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쿠데타는 진압됐지만 194명이 숨지고 144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쿠데타군은 거리에서 항의하는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감행해 사망자 중 47명이 민간인이라고 터키 정부는 밝혔다. 이어 쿠데타 진압과정에서 경찰 41명, 군인 2명, 쿠데타 가담·동조자 104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무하렘 코제 대령 등 대령급 소장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쿠데타는 15일 에르도안 대통령이 여름휴가차 수도 앙카라를 비운 사이 일어났다. 쿠데타군은 이날 오후 10시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루스해협 대교와 이스탄불 국제공항, 국영방송 등 주요 거점들을 장악했다. 또 오후 11시쯤 터키 민영 NTV 방송국을 장악한 뒤 “전국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방송했다.


쿠데타군은 방송 아나운서가 대독한 성명에서 “법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도록 헌법 질서·민주주의·인권·자유를 다시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군 최고사령관인 훌루시 아카르 장군을 앙카라의 군 사령부에 구금했다.


쿠데타가 당초 계획과 달리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쿠데타군의 통행 금지령을 어기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다. 이들은 이스탄불 탁심광장에 집결한 뒤 쿠데타 반대 야간시위를 열고 “군부 퇴출”을 외쳤다. 일부는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올라가 군인들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쿠데타군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시민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당초 망명설이 떠돌았지만 마르마리스에서 아이폰 채팅 애플리케이션 ‘페이스타임’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광장·공항으로 나가 정부에 대한 지지와 단결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6일 오전 4시 이스탄불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데타 발생 6시간 만이었다. 전용기에서 내린 에르도안 대통령은 “내가 여기 있다. 앞으로도 터키 국민과 함께할 것이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이번 쿠데타는 명백한 반역 행위”라며 “쿠데타를 주도한 군부를 모조리 쓸어내겠다. 무서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부군은 본격적인 쿠데타군 소탕에 들어갔다. 쿠데타군 50명은 자신들이 점거한 보스포루스해협 대교에서 탱크와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항복한 쿠데타군 숫자가 급증했고 비날리 일디림 총리는 16일 새벽 “1563명의 군인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쿠데타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대령 29명 등의 직책을 박탈했다고 터키 정부가 밝혔다.


미국·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터키 정부를 지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터키의 모든 정당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터키 민주 정부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군부의 국정 개입을 용납할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배후로 자신의 정적인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했다. 이슬람 성직자로 한때 에르도안의 정치적 동지였던 귈렌은 2013년 에르도안 측근의 부패 스캔들 이후 그와 결별했다. 에르도안은 스캔들 폭로 배후에 귈렌이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후 귈렌파로 분류된 군부와 검경 인사 수천 명을 숙청했다. 귈렌에겐 국가전복 기도 혐의를 씌웠고 귈렌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AP통신도 “군부에 남은 귈렌 추종 세력이 에르도안의 독재가 심해지자 쿠데타를 도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 중인 귈렌은 “터키에서 일어난 이번 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한다. 나는 이번 쿠데타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 한국인 110명 귀국행=우리 정부는 29일까지 터키 전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날 이스탄불 공항에선 한국인 120명이 발이 묶였으나 환승객을 제외한 110명이 오후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관계기사 3~5면


백민정기자·남건우 인턴기자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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