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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불 쌓은 탑위에 2천년을 그려얹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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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밤 우리 모두는 푸근한 잠을 잤습니다. 묵은해 근심 걱정은 물아래로 다 흘리고 찬란한 별자리 덮고 깊은 잠을 잤습니다.
지금 막 보신각 종이 파루를 쳤습니다. 에밀레 신종이 울어 동해바다가 들끓었고 미나리 새 순이 오르듯 상원사종이 울었습니다.
저걸 좀 바라보세요, 동녘 하늘이 열립니다. 늙은 솔 푸른 가지가 먼 수평을 일으키고 물결 탄 갈매기 한 마리 해를 물고 날아듭니다.
우리는 새 천지 앞에 신들메를 매야 합니다. 2천 불 쌓은 탑 위에 2천년을 그려얹고 그날의 영광을 위해 디딤돌을 놔야 합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어부는 파도를 갈고, 광부는 막장에서 태양을 캐 올립시다. 사십년 높아진 장벽도 우리 손으로 헐어야지요.
어제는 말없이 흐르는 임진강엘 가 봤습니다. 세월을 싣고 건너는 나룻배도 거긴 없고 강물은 흐르질 못한 채 철조망만 흐릅니다.
우리가 무릎에 앉힌 우리 새끼가 소중하듯 우리가 살아 온 세월은 눈물마저 소중합니다. 내 조국! 불러 본 그 이름, 그 이름이 소중합니다.
고난도 등불로 삼으면 순금보다 더 무겁고 연대도 일으켜 세우면 깃발처럼 빛납니다. 86년 역사의 바다에 민족의 배를 띄웁시다.

<시인 약력>
▲아호 백수 ▲1919년 경북 금릉출생 ▲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과 당선·『현대문학』추천완료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한국문인협회시조분과회장·영남시조문학회장 역임
▲75년 제11회 한국문학상 수상 ▲79년 제1회 가람문학상 수상 ▲84년 제3회 중앙시조대상 수상 ▲『채춘보』·『고마도』·『실일의 명』·『백수시선』·『시조창작법』등 저서 10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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