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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문제의 한민족화경향 뚜렷|남북한관계 새해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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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방-분단 40주년이었던 지난해에 남북한 관계에는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 서울과 평양을 잇는 대화의 통로가 다양화 됐을 뿐만 아니라 상례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사상 처음으로 비록 부분적인 범위 안에서나마 인적 왕래와 문화교류가 실현된 것이다. 이처럼 뜻깊은 출발이 올해에는 어떤 양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선 강조되어야 할 점은 오늘날에는 지난날과 달리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한민족의 영향력이 비교적 크다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강대국들의 입김이 여전히 거세게 밀려 들어오는 곳이기는 하지만 남북한이 그 사이 각각 키워온 국력과 체제능력은 자신들에게 몹시 불리한 열강의 「한반도결정」을 거부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에 관한 자신들 주도하의 합의창출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한반도문제의 한민족화」경향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렇게 볼때 남북한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분석은 이 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한국의 입장부터 살핀다면 제5공화정의 수립이후 한국은 북한과의 수준 높은 본격적인 대화를 일관되게 제의해왔다. 남북고위당국자 사이의 직접적 대화를 통해 남북간의 전쟁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고 궁극적으로 재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자는 전진적인 입장이다.
제5공화정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북한은 84년 가을 북한이 제의한 「수재물자」를 우리가 받아들이기로 아량을 보이자 마침내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안정화시키려는 김일성의 정치적 배려일 것이다.
현재 북한은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직면해 있는데, 그것이 경제적·정치적 파산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직되어 있는 대남노선을 폭넓게 완화해야 한다. 과도한 군사비 부담도 줄여야 할 것이며 서구로부터 자본 및 기술의 협력을 얻어야 한다. 한편 88년 서울올림픽의 확정이 평양에 주고 있는 정치적·심리적 부담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올해로 만 74세가 되는 김일성은 자신의 영향력이 북한주민 사이에 살아 있고 건강이 괜찮을때 이와 같은 전환을 기정 사실화하려는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선 올해로 예정되어 있는 7차 당대회의 개최를 명분있게 만들고 김정일이 명실공히 후계자가 되었을때 큰 이념적 갈등없이 한국 및 서구와의 협력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88년까지 한국에서의 정치상황 전개를 차가운 계산에 넣고 있다. 자신의「평화공세」와 그것에 따른 한국에서의 대북경계심 완화가 한국을 불안정화 시킬 수 있다는 붉은 실리타산을 잊지 않고 있으며, 이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남북한 관계의 이러한 새 조류를 주변 강대국들은 대체로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우선 미국은 북한을 「제2의 중공」으로 순치시킴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실질적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김정일체제가 앞으로 비교조적 실용주의노선을 보다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는 미국은 결국 북한을 탈소화시키고 미·중·일·한의 4각 협력관계 속으로 서서히 유도해내기 위해서도 남북간의 실질적 대화와 그것을 바탕 삼은 협력이 긴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중공 역시 무척 긍정적이다. 이 점은 중공정부 안에서 한반도문제의 최고권위자로 간주되는 도형울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이 지난해 9월23일자 북경주보에 발표한 영문논문인 「한반도 상황에 관한 관찰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상당히 객관적인 용어들을 사용한 이 논문은 남북한이 이제각각 자신에 의한 타방의 「제압」또는 「병합」이 불가능함을 깨달았으며, 이에 따라 남북한 모두「민족적 화합과 협력」을 향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한 다음, 『대화와 상호이해 및 상호조정을 통해 화해와 협력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북한이 태도를 변화한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우리로서는 북한이 과연 얼마만큼의 「진지성」 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할 것이지만, 이 논문을 통해 중공이 남북한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소련의 입장은 중공의 입장만큼 명백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소련이 최근에 와서 한반도문제에 대한 자신의 「개인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음은 분명히 새로운 현상이다.
자신이 배제된「남한·북한·미국의 3자회담」안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45년8월 자신이 북한을 「해방」했고 한국동난때 자신이 북한을 「지원」한 사실을 계속 두드러지게 상기시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소련은 북한에 대해 미그-23기를 비롯한 고성능 무기들의 대량공급을 통해 군사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체제가 미국과의 데탕트 (긴장완화) 회복과 중공과의 화해를 비롯한 국제적 긴장의 완화를 바탕으로 국내경제의 활성화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측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남북대화의 본격적인 진전이 자신의 국가이익, 그리고 자신과 북한의 군사적 밀착에 반드시 상충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는 2월 소련공산당 제27차 전당대회에의 김정일 참석과 그것을 전후한 양자간의 합의내용이 주목된다.
남북한관계의 진전 양상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관심이 큰 나라가 바로 일본인 것 같다. 한반도문제를 둘러싼 국제외교에서 행여 자신이 빠질세라 이러쿵저러쿵 앞지른 추측보도로 오히려 분위기를 흐려놓기도 하는 일본은 남북한관계의 진전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낙관론의 입장을 보인다.
분단 41년째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 민족의 상황은 어느 무엇보다 「제도화된 안정을 요구한다. 다시는 이 땅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어떠한 명분도 「제2의 한국전쟁」을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다.
전쟁 재발의 방지를 위해 남북한은 제5공화정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에 제시되어 있듯이 1차적으로 불가침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불가침의 약속을 바탕으로 남북한관계를 정상화시켜 선의와 신뢰를 쌓아올리면서「공영의 체제」를 발전시켜 나갈 때 민족 통일의 달성은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도부소장의 논문은 남북한관계가 그러한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특히 미국이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남북한관계는 역시 우리 한민족에 의해 주도되어야 하는데, 남북한 사이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커서 그 간격이 한두해 사이에 어떻게 조정될 수 있을지는 큰 의문으로 남는다. 그러면서도 병인 새해가 남북한관계에 정녕 뜻깊은 대화를 마련해 주는 보람있는 해가 될것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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