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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황색 예수전 3-8』|황광혜<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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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거리엔 휘황한 불빛과 크리머스캐럴, 그리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지쳐빠진 우리의 심신을 뒤흔들고, TV에선 불우이웃 돕기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연례행사적 분위기 이상의 것이 느껴지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해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시대적 아픔과 종교적 사랑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달에 출간된 신작시집『앵무새의 혀』(김현편·문학과지성사간)는 종교적 프리즘을 통해 이 시대의 병적 징후들을 드러내고 있는 시들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정환의『황색 예수전3-8』(32∼45면)은 우리시대의 질곡을 시인 자신의 뼈아픈 체험을 통해 드러내면서 새로운 인식속에서 확대된 기독교적 사랑의 치유법을 제시함으로써 아름다움과 올바른 미래를 꿈꾸는 자의 고뇌를 보여준다.
이 시인은 먼저 6·25가 남긴 폐허속에서 숨바꼭질하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어둠」에 길들어지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준다.
『밖은 쩡쩡한 대낮, 어둠속에서//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노깡 속에서 어둠은 오히려 편했지 온몸을 감싸주는 것처럼/…/어둠은 내 몸이 됐다, 어둠 속에서』이렇게 어둠속에 철저히 자신을 감추다가 어둠이 되어버린 우리의 의식상태를 점검한 후 이 시인은 그 자신의 감옥생활에서 겪은 치욕과 그 자신이 바라본적이 있는 공동묘지의 정적에서 솟아오른「망연자실한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 인간해방의 참뜻을 찾아 나아간다.
이 시인에게는「해방」이란 미래에 도래하게될 복된 순간이라기 보다는『혁명적인 아름다움 속으로/해방되고 싶다/하느님에게로 이어지고 싶다』라는 대목에서 드러나 듯이「혁명적인 아름다움 속으로」뛰어드는 행위 그 자체를 뜻하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만 하느님에게 이르는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이 시에서는 짙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어서 그는 우리들이 마주치고 있는 사회현실의 허상들과 양면적 의미들의 갈등속에 놓여 있는 우리들의 삶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람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홍등가 불빛이 어둠과 단짝을 이루는 것과 같이…』표면의 화려함이 내면의 어두움과 깊이 얽혀 있는 현실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할 사람은『피해가지 말고/넘어가지 말고/…/한없이 한없이 받아들이며 가야』하는 것임을 갈파하면서 이 시인은 이차세계에 대한 폭넓은 인식과 실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는 또한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사랑, 예수에 대한 사란, 그리고 자신의「아내」에 대한 사랑을 동질적인 차원에서 일체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있는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증폭시키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예수의 시대적 한계까지도 꿰뚫어야만 예수가 그의 삶속에서 실천해 보여준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뜻깊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시인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강렬한 힘을「빼앗긴 아름다움의 추억」에서 찾고 있는데 이「빼앗긴 아름다움의 추억」은 또한 거짓과 위선과 불의를 깨뜨리고 아름다움과 올바름을 세우려는 자의 「무기가 될 수있다」는 인식에 이름으로써 기독교적 사랑의 의미를 완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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