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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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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해마다 효행상수상자를 가려내는 이 모임은 흐뭇한 고민을 해야한다. 하나같이 착하고 성실하고 갸륵한 사람들을 앞에 놓고 더 착하고 더 갸륵한 사람을 골라내는 일은 흐뭇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들의 덕행을 저울질하는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닌가 하는 주저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 자리에 앉으면 우리가 살고있는 이세상 곳곳엔 그처럼 착하게 사는 일들로 하여 사람다운 삶, 사람다운 도덕률이 고고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에 깊은 감동과 함께 안도의 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세상엔 착한 사람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올해의 효행대상수상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한참 논의되었던 것은 38세의 효부 이정옥여사와 14세 소녀 김유신양의 효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수·우·미…식의 평점에 따르면 세분의 심사위원이「수」를, 세분이「우」를 배점한 이정옥여사가 당연히「대상」자 였다.
그러나 김유신양의 효행은 철부지 소녀임에도 그처럼 애틋하고 믿어지지 않는 인간드라머를 갖고 있어서 감동의 폭이 넓고 깊었던 것 같다. 일석 이희승선생과 김옥렬총장은 오늘과 같이 청소년문제가 많은 세태에 김양은「살아있는 사회교육」의 표양이 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다.
김양은 유아시절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의 어머니는 5년전 영양실조로 쓰러져 병고를 치르다가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는, 측은하기 이를 데 없는 역경을 겪었다.
10세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그는 날품도 팔고, 남의 땅 3백평에 밭농사도 짓고, 해녀작업도 배워 가계를 꾸려갔다.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봉양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김양 위엔 네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데, 그의 학비까지도 대어 학업을 이어가는 일을 도왔다.
더구나 기특한 것은 본인이 언제나 명랑한 성품을 잃지 않고 있어서 주위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학교성적도 우수한 점으로 미루어 그 성실한 삶의 자세는 그의 나이를 잊게한다.
이정옥여사의 경우는 그런 절박하고 애틋한 사연은 없다. 그러나 4대의 대가족 속에서 15년 동안 묻혀 살며 위로는 86세의 시조모로부터 시부모, 아래로는 시누이·두 자녀에 이르기까지 봉양과 수발을 들고 한때는 본인이 직장생활을 하며 그 모든 일을 꾸려갔다.
선대 11위의 제사를 봉사함은 물론이고, 현세에서 모시는 노인들에게는 용돈 드리는 일을 거르는 적이 없고 건강을 보살피는 정성이 여간 아니다.
여름 장마때면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시조모가 처마낙수물 소리에 잠못 이루는 것을 걱정해 물 떨어지는 자리에 헌옷을 펴놓았다는 얘기는 비록 작은 효도지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여사는 8년 동안 가계부를 적고있다고 한다. 집안살림 또한 얼마나 찬찬하게 챙기는지 알 수 있다.
효도란 요란하게 큰 소리로 봉양하는 효행보다 작은 일, 하찮아 보이는 일에까지 정성과 따뜻한 관심을 쏟는 작은 덕목들이 모이고 쌓인 행적에서 더 고귀함을 볼 수 있었다.
일찍이 동양적 도덕생활의 준거를 교훈한 공자는 효도의 참뜻을 이렇게 설명한 일이 있었다.
『요즘의 효자는 부모를 물질로써 봉양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 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논어·위정).
시속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어 어찌 2천년 전의 이 말을 오늘 못들은 체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효도의 번거로움을 곧잘 물질의 힘으로 대신하려고들 한다. 세태는 그나마도 바뀌어 요즘은 핵가족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생활의 중심을「나」에게서 찾으려 한다. 효행이나 효도를 번거로운 일, 귀찮은 일, 부담스런 일로 여기는 사고방식부터 잘못되어 있다.
효는 인간의 도리, 사람됨의 당연한 조건이 아닌가. 그 조건 없이 인간의 역사가 과연 있을 수 있으며, 사랑의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부모는 보상 없는 사랑과 희생을 자녀들에다 쏟는다. 자녀들이 그 부모 모시기를 이해타산으로 따진다면 그야말로 천륜을 거역하는 일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아니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다』
옛 말은 천년이 아니라 수천년이 지나도 새롭고 힘이 있다.
삼성미술문화재단이 제정한 효행상은 그런 의미에서 값있는 행사로 평가하고 싶다.
최종률<중앙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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