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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출생신고’ 될 권리를 보장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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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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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석
사회부문 기자

“전 남편의 주민등록등본이 있어야 출생신고가 돼요.”

“전 남편은 연락이 안 되는데….”

지난해 9월 당시 열 살이던 서현(가명)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주민센터를 찾은 엄마(51)는 직원의 말에 좌절했다. 엄마는 두려웠다고 한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키워 온 사실 때문에 처벌받을까 봐서다. 하지만 엄마는 용기를 냈다. ‘서현이 학교는 꼭 보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현이가 그간 학교에 가지 못한 것은 출생신고를 안 해서다. 엄마는 세 번이나 출생신고를 하려 해도 제도의 문턱에 걸렸다. 아이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 남편 A씨와의 ‘친생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엄마는 2006년 6월 26일 A씨와 이혼했다. 이혼 절차 진행 중 다른 남자를 만나 서현이를 임신했다. 엄마는 이혼 나흘 뒤인 6월 30일 수원의 한 병원에서 서현이를 낳았다. 엄마는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출생신고를 시도했다. 현행법(‘이혼 300일 이내 출생자는 전 아버지 소생으로 추정한다’)상 서현이는 A씨의 호적에 올라야 했다. 엄마가 A씨와 이혼한 때와 아이가 태어난 시기가 4일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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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A씨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서현이를 자기 자식으로 받아줄 리 만무했다. 구청에서는 엄마에게 엄마의 성을 따라 출생신고를 하려면 A씨와 아이의 친생 관계를 부인하는 소송을 한 뒤 다시 오라고 했다. 엄마는 소송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는 보증인이 있으면 출생신고가 가능한 인우보증(隣友保證)제도도 시도했다. 하지만 그때도 A씨와의 친생자 기록이 검색돼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입법취지는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인권도 중요하다. 서현이 같은 아이들이 이름을 가질 권리, 또래들처럼 학교에 갈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

여섯 살이 넘도록 아이의 출생신고를 못한 B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B씨는 이혼 소송 중인 C씨를 만나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는 아이만 두고 도망쳤다. 미혼부가 친모의 인적 사항을 모르는 경우 법원의 승인을 받아 미혼부의 인적 사항을 바탕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친모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록거주지 모두를 몰라야 하는데 B씨는 친모의 이름을 안다”며 출생신고를 반려했다. 제도가 아이를 투명인간 취급해 버린 것이다.

‘보편적 출생신고제’가 보완책이 될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아동인권위원회 김영주 변호사는 “외국처럼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정부기관에 출생신고를 하거나, 최소한 통보라도 해 주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준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