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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브렉시트, 세계화에 소외된 계층의 탈퇴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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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한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열린 국민투표 결과는 52대 48로 탈퇴파의 승리였다. 영국이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영국 왜 EU 탈퇴하기로 했나

전문가들은 극심한 분열·양극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지방이 코스모폴리탄적이며 자유분방한 도시를 이겼다. 특히 잉글랜드 북동부 벨트에서 탈퇴 의견이 강했다. 상대적으로 노동자 계급들이 몰린 곳이다. 그간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계층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기성 체제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단일 시장을 탈퇴하는 데 따른 경제적 위험성 경고에 귀 기울기보다 반이민·주권·국가정체성에 더 끌렸다. 그들은 ‘국가 위의 국가’로 여겨지는 브뤼셀을 상대로 ‘통제권을 돌려받겠다’(Take back control)는 구호에 호응했다.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영국중앙은행인 영국은행(BOE)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제도에도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탈퇴 진영의 지젤라 스튜어트 노동당 의원은 “기득권층의 위협에도 사람들이 겁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이민은 구실이고 진정한 이유는 웨스트민스터(정치권) 엘리트에 대한 봉기”라고 해석한 이도 있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24일자 ‘유럽 대통합 시대의 종언 … 영국, EU 탈퇴’>

5년 후 EU와 영국의 운명은

"영국은 쪼개지고 유럽연합은 소수 정예로 더 조화롭게 재편된다.” 세계 경제·외교 전문가들이 전망한 브렉시트 5년 뒤 유럽의 모습이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5년 뒤면 영국(United Kingdom)은 사라질 것”이라며 “스코틀랜드는 독립할 것이고 북아일랜드가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와 병합할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몇 개 국가가 추가로 EU를 떠나면서 EU는 핵심이 되는 소수정예 국가들의 결합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알리안츠그룹의 무함마드 엘에리언 수석 경제고문도 “EU를 떠나는 국가들이 더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EU는 프랑스와 독일의 확고한 협력 관계 속에서 더 조화롭고 안정된 형태를 갖출 것”이라며 ‘EU 소수정예론’을 뒷받침했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는 “광범위한 유럽 통합은 실패한 실험으로 여겨지겠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핵심 유럽 국가들은 정치·경제적 통합을 아주 잘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소수 정예로 재편된 EU가 예전 같은 큰 영향력은 행사하지 못하리라는 지적도 나왔다. 데니스 로스 전 백악관 중동담당 특별보좌관은 “5년 후 EU의 국제적 영향력은 지금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28일자 “영국 빠진 EU, 5년 뒤 소수 정예로 재편”>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영국에 유럽 법인이나 생산 거점을 둔 기업은 EU 회원국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혜택이 사라지면 한국 기업은 영국에 10% 관세를 물어야 한다. 영국에 수조원대 투자를 한 인도 타타그룹, 중국 완다그룹 등의 최고경영자(CEO)는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유럽 법인을 EU 국가로 옮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순간 한·EU FTA는 영국에 대해 효력을 잃게 된다. 각종 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한국은 영국과 별도의 FTA를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보다 관세가 올라갈 수 있다. 2년의 유예 기간 동안 세계 각국과 무역 협상을 해야 하는 영국이 한국과 우선 협상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현재 EU 회원국 중 한국 제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영국이다. 한국의 EU 수출 교두보로서 영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브렉시트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면서 원화 가치가 하락세를 이어 갈 수 있다. 엔화 강세로 한국 상품은 일본 상품에 비해 가격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업종별로는 전자·자동차 업계는 브렉시트의 영향이 큰 반면 철강·조선·유화 업계는 미미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25일자 ‘엔화 강세 …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상품 수출은 호재’>

자문자답 내공쌓기

나라의 중요한 일을 소수 의 엘리트가 결정하는 것과 다수의 국민이 결정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바람 직한 결과를 낳을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 고 있는 브렉시트(Brexit)에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뭉쳐야 산다

여러분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는 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혀 무역을 하지 않는 나라라고 가정해봅시다. 아마 여러분은 자신이 만든 상품을 나라 안 사람들에게 팔려고 애를 쓰겠죠. 그런데 어느 날 드디어 모든 국민에게 스마트폰을 팔았다면, 물건을 그만 만들고 장사를 접어야 할까요? 아니죠. 물건을 팔 수 있는 또 다른 곳을 찾아야겠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사는 누군가가 여러분이 만든 스마트폰을 보더니 자신의 나라에는 없거나 있다고 해도 자기 나라 스마트폰보다 훨씬 싸다며 그 스마트폰을 자기 나라에 가져가 팔고 싶다고 하면 어떨까요. 여러분 입장에서는 당연히 팔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겁니다. 이것이 바로 무역이 이뤄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물건을 수입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의 물건이 들어와서 많이 팔리는 건 손해입니다. 물건 판 돈이 다른 나라로 가게 되니까요. 그래서 각 나라는 다른 나라의 물건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쌓습니다. 바로 관세라는 것이지요. 관세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물건값에 얼마를 더 붙여서 자국 내 비슷한 물건의 가격보다 비싸게 책정합니다. 자기 나라의 기업을 보호하고 돈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기업을 보호하다 보니 결국 그 어디에도 다른 나라의 물건을 사거나 팔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번엔 관세를 없애는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A나라에서는 스마트폰이 싸고, B나라는 포도가 싸다면 서로 스마트폰과 포도를 맞바꿔서 팔 수 있게 서로의 관세를 낮추는 겁니다. 물론 포도와 스마트폰을 생산해서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만 비싼 값에 팔던 사람들은 이 경우 전보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려다 모든 기업이 망하는 것보다 차라리 관세를 없애서 각자 유리한 품목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게 여러 나라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한발 더 나가서 노동력과 원재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거대한 시장을 만들고 단일 화폐로 통합하여 관리한다면 돈과 상품의 흐름이 훨씬 더 원활하고 풍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겠죠.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긴 하지만 EU, 즉 유럽연합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범했습니다.

섞이면 죽는다

물론 여러 나라의 시장을 하나로 합칠 경우 생기는 문제도 있습니다. 큰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겁니다. 팔 수 있는 물건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될 수 있습니다.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 많이 세계화에 반대하게 됩니다.

세계화의 흐름에서 나타난 문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정치적 결정에 의해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세계화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 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받아들였던 겁니다.

브렉시트, 즉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한 영국 국민의 심리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모두 깔려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밀려오는 난민들에 대한 복지비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EU에 남아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엘리트 정치권이나 자본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탈퇴를 강하게 주장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이들이었습니다. EU에 남을 경우 누리게 될 경제적 이득이 자신들에게는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한 듯 보입니다.

반면교사

브렉시트는 진행 중입니다. 50%를 겨우 넘긴 찬성률에 벌써 리그렉시트(Regret+Exit)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고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탈퇴가 완료될 때까지 이런 혼란은 지속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또다시 여러 번 출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세계화의 근본적 한계가 우리나라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FTA를 진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손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손해를 줄이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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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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