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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언짢아도 다시 찾는 소설 초심으로 돌아간 ‘이야미스 여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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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6 면

ⓒ Ayako Shimobayashi

‘이야미스의 여왕’이 돌아왔다. 읽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진다고 해서 싫다는 뜻의 ‘이야다(いやだ)’와 미스터리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른바 이야미스 장르의 1인자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ㆍ43)가 신작 『리버스』(비채)를 들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08년 발표한 13살 소년의 살인을 다룬 충격적 결말의 데뷔작 『고백』은 일본에서만 320만 부, 한국에서 16만 부가 팔려나갈 만큼 화제가 됐다. 『고백』『백설공주 살인사건』등은 영화로,『속죄』『고교입시』등은 드라마로 재연될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와 리듬감 있는 전개를 자랑한다.


4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미나토는 “오랜만에 초심으로 돌아가 입술을 앙 다물고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동안 훈훈한 작품을 쓰기도 했지만 팬들이 그녀에게 기대했던 것은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층층이 쌓여서 발생하는 심리를 그린 미스터리였기 때문이다. 세간의 기대를 아는지 작가는 “지난해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되자 ‘다시 돌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리버스』는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섯 명의 대학생이 친구네 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자동차 사고로 하나를 잃은 이후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사건이 한 통의 편지로 인해 다시 현재진행형의 일이 되어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번 작품엔 두 가지 요청이 있었어요. 사인회에 오신 한 남자 팬 분이 ?다음엔 남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제 작품은 늘 여자가 화자였거든요. 거기에 미스터리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집자가 마지막 장면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끝나는 소설을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향해서 모든 이야기와 인물을 구성했어요. 마치 영상에서 리버스 버튼을 누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죠.”


아무리 비중이 적은 엑스트라라도 소설 속 모든 등장 인물의 이력서를 만드는 미나토는 이번에도 촘촘한 이력서를 준비했다. “책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 중 한 사람 정도는 ‘아, 나랑 정말 비슷하다’ 싶으실 거예요.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많이 따왔는데 사실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 않게 질투심이 많고 서로 경쟁하고 남을 의식하잖아요. 모든 사람이 다 히어로 같은 것도 아니고요. 마음이 여린 후카세가 커피를 좋아하는 설정은 저를 본딴 거예요. 제가 매일 출근하다시피 가는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서 커피를 배우고 마시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얻고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렇다면 작가가 죽음과 그 이후 관계에 대해 계속해서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꼭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아무 계기가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에 대해 그리는 건 쉽지 않죠.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관계를 돌이켜 보고 깊이 생각하게 되잖아요. 저는 ‘이야미스의 여왕’이라는 호칭이 싫진 않지만 제 소설이 이야미스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나쁜 사람이 끝에 가서 웃으며 끝난다면 정말 싫겠지만 제 작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자랑한다. “그 전에는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했는데 서른이 갓 넘었을 때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도구도 필요 없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다가 글을 쓰게 됐죠.”


낮에는 주부로, 밤에는 작가로 불철주야 일한 결과 2005년엔 신인각본상 가작을, 2007년엔 창작라디오드라마 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골에 살면서 방송국을 오가긴 힘들 것 같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여전히 한밤중에 부엌과 욕실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에서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밤에 쓴 글은 평소보다 묵직하죠. 그래서 꼭 낮에 사람들이 있는 데 가서 다시 읽어봐요. 퇴고할 때 소리 내어 읽어보긴 하지만 딱히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아요. 낭독회는 한국에서 처음 해 봤는데 책을 읽을 때 독자분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일본에서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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