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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시바·료오따로」(사마료태낭)는우리나라에도 폭넓은 독자층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 역사소설가다.
그는 소설을「발로 쓴다」고 할만큼현장에 충실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본 지식인가운데 가장 편견이 없는 한국관을 가졌다.
그가 한국에 널리 알려진 것은그의 소설때문만은 아니다.『고대 일본과 조선』,『조선과 고대 일본문화』, 『일본의 조선문화』등 그의 많은 한국관계 저작과 에세이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는 대학(대판외국어대)에서몽고어를 전공했다.그래서 그의 역사를 보는 시각은 독특하다.그의글가운데는 우랄-알타이어족 얘기가 자주 나온다.
우랄-앝타이어족의 본향은 시베리아. 그 몽골로이드가 남하하여 중국 동북지방,한반도,그리고 일본열도로 건너가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시바·료오따로」씨가 동국대초청으로 내한, 지나달 30일 한일양국문화의 특질에 관한강연회를가져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6,7세기 백제에서 건너간 한국인20만명이 일본 율령국가의 기틀을 마련 했으며,일본관료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밝혔다.
백제가 일본과 처음 국교를 맺은 것은 4세기 후엽 근초고왕때 부터다.
이어 백제는 405년 왕인박사를 통해 한자문화를 전했고,538년 성왕은 사신을 보내 불교문화를 전파했다. 무령왕13년(531)에는 오경박사 단양이가 일본에 건너가 유교를 가르쳤고, 그뒤 3년마다 오경박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때문에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때 일본은 3만명의 원군을 보내 백제를 지원하려 했으나 백강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때 수천명의 백제왕족과 교양있는 상층계급을 망명시킴으로써 일본 문화에 충격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은 극히 일부만이 기록 되었을뿐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졌다.
「시바·료오따로」씨가 백제인 20만명이라 한것은 결코 과장된 숫자가 아니다.
당시 일본의 천지천황은 의자옥의 옥자 여풍과 친분이 두터워 백제계를 득세시켰다.그러나 천지천고의 동생천무천황이즉위할때는 통일신라의힘이 융성해져 친신라 책으로 급선회했다. 여기에는 신라의 김춘추가일본에 건너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역사는 이처럼 한반도의정치적 영향 속에서 지탱되어 온 때도 있었다.
일본의 역사를 그런 시각에서 조명하는 지식인의 동찰력은 우리 사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자극제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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