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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농성」의 회오리 불러 미문화원 농성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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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대·연대·고대·성대·서강대등 5개대생 73명이 지난 5월23일 일으킨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은 한해를 온통 점거농성의 뜨거운 회오리속으로 몰아넣었다.
구속학생 20명의 법정소란으로 법무장관이 전격 경질되고 학사징계와 관련, 서울대총장이 하루아침에 바뀌는등 일파가 만파를 불러일으켰다.
더우기 이사건은 학생운동의 「용공화」 시비에 이어 운동권학생들에 대한 대량검거와 수배선풍을 몰고왔으며 정부가 「학원안정법」제정을 구상, 시안까지 내놓았다가 한바탕 파란 끝에 보류한 분란도 빚었다.
재판과정에서도 재판거부·묵비권행사·분리심리·퇴정명령·재판부기피신청등「형사소송법 실습장」을 방불케하는 기록을 남겼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와 함께 사건기록을 11월26일 서울고법에 송부, 이 사건은 서울고법제1형사부에 배당돼 내년 1월초부터 시작될 2라운드를 기다리고있다.
10월초 1심에서 징역3∼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함운경피고인(서울대)등 19명은 서울구치소의 만원사태로 11월26일 안양교도소에 이감됐으며 비교적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항소이유서작성에 몰두하고 있다.
독방에 수용된 이들은 하루에 책2∼3권을 읽어낼 정도로 독서에 몰두하고 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홍일점 전진숙양 (연세대)은 고향인 군산에 내려가 있으나 무기정학이 풀리는대로 복학할 예정.
구류처분을 받은 43명은 정식재판을 청구, 2심에 계류중이나 대부분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사건의 주역이라 할수있는 함군과 김민석군 (서울대) 은 전학련삼민투사건에 다시 연루돼 10월 15일 검찰이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구성혐의로 추가기소, 허인회군 (고려대)등과 함께 제2의 1심재판을 받아야할 처지다.
「임꺽정을 의적으로 칭송하는 국민성은 바로 잡아져야한다」 「국가시책에 대해 폭력적 데모로 대처하려고 하는 25년간의 의사표시방법은 우리사회에서 사라져야 한다」 는 등의 이례적 「훈계문」을 판결문에 집어넣은 서울형사지법 이재동부장안사는 그간 밀렸던 일반사건을 처리하느라 분주한 모습.
「이훈계부장판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등 여론의 큰 반향에 당혹, 한때 술이 늘기도 했으나『학생들을 일깨워 주려는 순수한 의도였다』 고 밝히고 있다.
장관재임 5개월만인 7월16일 법정소란에 대한 전격적인 문책에따라 퇴임한 김석휘 전법무부장관은 10월말
서울수송동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설해 변호사로 활동중.
김변호사는 개인회사 법률고문을 맡는 외에도 일반사건을 수임, 판례연구등에 몰두하고 있으며 금명간 법정에도 나갈 계획.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직에서 물러난 이건개부장검사는 서울 고검으로 옮겼다.
이사건 구속학생에게 무기정학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내린데 대한 문책으로 7월22일 경질된 서울대 전총장 이현재교수는 『다시 교단에 서고 싶다』 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일단 대학원의 「재정학특수연구」과목에 시간강사로 출강중.
그는 한동안 집필을 중단했던 「재정학」책을 자택에서 마무리하고 있으며 함께 물러난 고윤석부총장은 물리학과로 원대복귀했다.
서울대는 이 사건 1심판결후 개교이래 처음으로 징계를 번복, 구속학생 7명의 처벌을 무기정학에서 제명으로 바꾸었고, 나머지 4개대학도 실형을 선고받은 학생 모두를 제명 또는 제적시켰다.
농성장소였던 미문화원 2층 도서실은 사건발생 25일만인 6월17일 다시 문을 열어 예전과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
미문화원측은 그러나 2층도서실로 통하는 1층 출입문을 2중문으로 개조, 안에서 신분을 확인한후 1명씩 문을 열어주도록해 출입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갈수 없게 구조를 바꾸었다.
농성사건이후 경찰은 매일 1개중대 (1백50명)를 담 주변에 24시간 배치, 경비를 대폭 강화했고 점거사건이 있을 때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꼼꼼한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미문화원사건의 배후로「삼민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정위」를 지목한 당국은 6월초부터 각대학삼민투 관련학생에 대한 일제점거와 캠퍼스 수색에 나서 운동권의 발본색원을 시작했다.
이 분위기는 「깃발」「이화언론」「학원침투 간첩단사건」「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주화운동 청년연합」등에 대한 수사로 숨돌릴 틈없이 이어져 「공안시대」라는 유행어도 생겼다.
이로인해 학원자율화 첫해인 지난해에는 60여명이었던 구속학생수가 금년에는 11월말현재 삼민투 1백40여명, 민정당정치연수원사건 1백91명등 6백50여명 (현재 1백여명은 풀려남)으로 무려 10배가 늘어났다.
그중 문화원사건 이후의구속자가 6백여명인 것을보면 이사건의 여파를 짐작할수 있다.
자율화이전인 81∼84년까지 4년간의 구속학생이 8백80여명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아도 85년은 「공안의해」였음이 분명하다. <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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