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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 외길로「70평생」|우석김태희옹 첫 작품전시회|12월5∼14일 종로 인창화랑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전통 나전칠기 공예의 달인 김태희옹이 70평생 최초의 개인전 (12월5∼14일·서울 종로 인창화랑)을 연다. 『나전칠기는 한국민족의 얼이 깊이 스민 전통공예지요. 지금부터라도 경제성 있는 상업제품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의 동시 발전을 도모, 먼훗날 부끄럽지 않을 나전칠기와 역사를 가꾸어야 합니다.』
그의 작품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공예를「현대예술」로 승화, 발전시킨 전위적인 개척이다.
전시회에 내놓을 작품은 60년동안 만들어온 서류함·장농·구식경대·상·삼층장·다도구·벽걸이등의 공예품들중 예술성이 짙은 작품50여점.
필생의 역작이며 가보로 간직해오고있는 순금나전건칠약주머니 『인농』과 일제때선전에서 특선한 생옻칠 『탁자』 등도 내놓는다. 이밖에 국전 초대작가 박성삼·김성수·백내원·곽계정씨등과 수제자들이 찬조 출품을 한다.
우석김태희옹 개인전 출품작증 가장 눈길을 모을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은 싯가3억원의 색패십장생도 나전칠기 장농 (12자).
중동의 한 부호와 이미 상담이 오가고 있는 이 장롱은 「전통」 을 바탕한 현대 나전칠기 공예의 극치를 보여준다.
『시대 조류를 따라 나전칠기 공예가 상업성을 띠고 제작되는것을 구태여 탓하고싶진 않아요. 아쉬운 것은 작가가 작품에 좀더 관심을 갖고 연구,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석은 작가가 된다는 것은 노력만으론 어렵고 천부적인 「소질」과 「집념」이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름을 내거나 상업성을 띠는 개인전을 절대금기시해 지금까지의 예인경력에 한번도 개인전시회를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도 한국나전칠기보호육성회를 중심으로한 제자들의 간곡한 청에 응한 것이다.
그의 나전칠기 경지가 간간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경무대·청와대의 외국 귀빈선물을 작품의 제작 정도였다.
이승만대통령이 「아이젠하워」미국대통령에게 방한기념선물로준 『금관도안 서류함』과 박정희대통령이 「케네디」·「존슨」미대통령에게 각각 방미·방한기념선물로준 나전칠기 『서류함』『황룡자개문갑』등이 대표적인 예다. 1916년 경기도 용인출생인 우석은 서울 진성중학을 졸업한후 이왕가미술공예제작소에서 일본인「이시노」(우야신문낭) 에게 7년동안 사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선전에서 특선(41, 42년)과 입선 (38, 40년) 을 각각 두번씩했고 8·15해방후는 국전서 연속4회 특선, 추천작가가 됐으며 국전심사위원도 지냈다.
해방직후 설립한김태희 나전칠기공예연구소는 현재도 서울성북구안암동3가 110의15 공장을 겸한 자택에 간판을 건채 계속 후진양성을 해오고있다.
그의 작품은 순수 생칠기법과 색감의 조화로 정평이나있다. 자개에 청·홍의색깔을 염색하는 색패제작법은 그의 독특한 개발이다.
옻칠 정제도 기구를 일본으로부터 도입, 생옻을 직접 정제해 쓴다.
원형적인 전통계승보다는 현대예술로의 승화 추구라는 「도식이탈」때문에 인간문화재 지정을 아직껏 받지못한 우석은 『길러낸 제자들이 근래 자신의 도안등을 표절, 상업적 경쟁을 벌인다』 고 못내 섭섭해 했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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