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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급한 실업에 미지근한 처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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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발등의 불」처럼 화급해진 실업자증가현상이 팔장끼고 볼 수 없는 상황이자 드디어 손을 쓰기로 했다.
정부는 22일 처음으로 고용대책위원회를 구성, 실업문제에 대해 중-장기 대책을 협의하는 한편 당장 심각한 실업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방안으로 예산사업의 조기집행, 민간기업 취업근로자의 임금인하나 근로시간단축에 의한 해고억제 등 방안을 내놓았다.
고용대책위원회라는 특별협의기구까지 만들어 고용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동안 『우리경제에 별문제 없다』고 낙관론에 심취해 외면해 봤던 실업자문제의 심각성을 정부에서 뒤늦게 나마 깨달은 것이다. 정부의 시각이 경제현실을 바로 보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응 평가할 수 있다.
신병현 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은 상반기 우리경제가 3.3%의 저성장에 머무르고 대량해고사태가 발생하는 가운데도 경기과열을 우려한다는 엉뚱한 소리를 되풀이해왔고 환율조정, 수출금융지원, 주택건설촉진책 등을 발표하면서도 경기대책과는 관계가 없다는 강변을 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호도해왔다.
1차 고용대책위원회에서도 정부측은 3·4분기의 경제성장률이 5.4%에 달했다는 점을 앞세워 『실업문제가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고 전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3·4분기의 성장률이 수확기를 맞은 농업 부문의 성장에 주도된 것이고 제조업 부문은 상반기의 4% 성장에도 못 미치는 3.9%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전제는 아직도 낙관론을 버리기 싫어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내년도 경기전망에 대해 7%성장달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국제수지균형과 3% 물가안정을 유지하겠다는 정책의지를 고수하고 있는 만큼 이번 고용대책은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고용대책은 허둥대고 만든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효과는 어느 정도 거둘지 미지수다.
우선 가장 전면에 내세운 정부예산사업의 조기집행만 하더라도 전체 예산의 경기대응적인 조치 없이 이미 정해진 사업의 조기집행만으로 9만명의 인력을 흡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연초의 공사착공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겠느냐도 문제이지만 그 공사로 흡수될 인력이 9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은 의심스럽다.
또 9만명의 인력을 흡수한다 해도 현재 심각한 문제가 되고있는 대졸자 등 고급인력의 흡수와는 관계가 없는 단순 노동력의 시한적인 취업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가지 주목을 끄는 것은 민간기업의 추가근로시간단축이나 임금인하를 통해 해고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은 물론 실업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에서 일응 긍정적인 면을 갖고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극히 최근 공무원 봉급의 4%인상, 국영업체 임직원봉급의 3∼5% 인상을 발표한바 있다.
민간기업에 대해 임금인하까지 거론할 생각이라면 정부가 솔선수범 해 공무원 봉급이나 국영기업체 임금조정에서 먼저 이 같은 정책의지를 반영시켰어야 옳았다.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임직원의 봉급은 예년수준으로 올리면서 민간기업에만 임금인하나 사실상 수입의 감소를 의미하는 초과근로시간감축을 권유한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측에서 무어라 하겠는가.
『경기가 나쁠 때 사람을 줄이는 것은 기업체질강화·경영합리화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주장해온 것이 정부측이었다.
따라서 이번 방안 중에는 정부시책의 일관성에 새로운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내년도에 주택 30만호를 건설하겠다는 것도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 속에서 과연 실현가능 하다고 보고 내세운 것인지 의문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정부의 고용대책은 근본적인 치유를 외면한 임시방편의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경제원론 같은 이야기지만 실업을 막고 고용을 확대해 나가려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전체 경기가 활기를 띠어야한다. 그런데도 투자마인드제고나 투자활성화 대책은 하나도 제시된 게 없다.
우리경제는 선진국 경기침체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등으로 수출전망이 어두운데다 외채 부담의 과중이라는 점까지 안고있어 경제정책 수행에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심각한 실업자문제를 염두에 둔다면 정책목표를 다소 수정, 물가안정이나 외채문제의 해결을 1∼2년 늦추더라도 근본적인 경기대책을 생각해야할 시점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도 7%성장이 가능하다는 전제아래 국제수지균형, 물가 3%안정을 염불처럼 외고있는데 이처럼 여건이 낙관적이라면 물가나 국제수지목표에 다소탄력성을 주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는 의견이 한국개발원(KDI)의 일부 전문가나 경제기획원 내부에서도 일고 있음을 주시해야한다.
동시에 기업의 투자마인드를 자극, 얼어 붙은 민간투자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진정한 고용대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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