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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일당 400만원 황제노역’에 관해 덧붙이고 싶은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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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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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최근 ‘서민들 일당이 얼마인데 누구는 일당 400만원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라는 논조의 언론 보도들이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당연히 분노할 만하다. 그런데 이에 관해 설명 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벌금 미납으로 인한 노역장 유치기간은 피고인에 따라 일당을 따로 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형법 제69조는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하고 있다. 유치기간의 상한이 3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문제된 사건의 경우 선고된 벌금 40억원을 1000일로 나누면 400만원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벌금 40억원을 선고받게 되어도 ‘1일 400만원’이다. 애초에 일당의 문제가 아니라 유치기간 상한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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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십억, 수백억원 벌금을 3년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국회에서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형법이 유치기간 상한을 3년으로 정한 것에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벌금형은 원래 징역형 등 자유형보다 체계상 더 가벼운 형벌이다. 본질적으로 재산을 박탈하는 형벌인 벌금을 내지 않는다 하여 무제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으므로 3년의 제한을 둔 것이다. 단기 자유형의 폐해를 막기 위해 벌금형이 활용되어 온 점을 생각하면 벌금형은 본래 가벼운 범죄에 적합하다. 고액 벌금형이 생기는 이유는 주로 범죄 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징역형과 별도로 수익 상당의 벌금을 필수적으로 병과하도록 하는 특별법들 때문인데, 엄밀히 말하면 범죄 수익의 박탈은 벌금형이 아니라 몰수, 추징 또는 체납 세금의 강제징수를 철저히 함으로써 할 일이고, 중죄라면 벌금 액수 상향에 앞서 징역형을 무겁게 하는 것이 정도이며, 벌금형 집행의 경우에도 노역장 유치에 앞서 은닉 재산을 광범위하게 추적해 강제징수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우선이다. 철저한 재산 몰수는 노역장 유치보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일반 시민들이 분노하는 반응은 당연하다. 시민들이 이런 세세한 법규정까지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시민들은 당연히 직관적으로 큰 틀에 있어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고, 이 여론을 계기로 법 개정 또는 법 집행 개선을 논의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론형성의 기능을 하는 언론은 좀 더 살피고 시민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