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재일기] 중국 동포 월세보증금 떼먹는 집주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기사 이미지

김태윤
경제부문 기자

“중국 동포(조선족)의 약점을 잡아 전·월세 보증금을 떼먹으려는 집주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불법체류자들은 보증금을 떼여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하죠.”

중국 동포를 상대로 출입국 업무를 대행하는 한 행정사의 말이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 동포 사회에서는 만연한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6월 27~30일 중국 동포가 밀집해 사는 서울 대림동·신길동·신림동에서는 이 같은 사연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방문취업(H-2) 비자로 3년 전 한국에 들어온 중국 동포 박경순(60·가명)씨는 석 달 전 월세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 그러나 집주인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반환을 요구하는 박씨에게 집주인은 “출입국 관리소에 신고하는 수가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며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박씨는 결국 관악구청과 지인의 도움으로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하는 등 소송 끝에 겨우 보증금을 받아냈다. 박씨는 “집주인이 내가 불법체류자인 줄 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식당 일을 하는 김정숙(44·가명)씨는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홀로 살았다. 그는 2년 전 단기체류 비자로 입국한 후 체류기간이 만료된 불법체류자였다.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 것은 두 달 전. 정부가 올 4월부터 6개월간 불법체류 외국인이 자진신고하면 합법적으로 재입국할 기회를 주는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국 후 떳떳하게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김씨는 월세 계약기간이 끝나자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김씨가 사는 동안 방바닥이 깨져 공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마음이 급했던 그는 결국 보증금 중 100만원만 돌려받고 출국했다. 대림동에 있는 해외동포지원센터 관계자는 “비자와 외국인 등록증을 받는데 수개월씩 걸리는 경우가 있어 집을 비워놓고 출국하기 어려운 이들이 많다”며 “일부 집주인들이 이런 처지를 악용해 보증금을 떼먹거나 적게 주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약 195만 명) 중 절반은 중국 국적이다. 또한 외국 국적 동포 체류자 76만 명 중 65만 명(85%)이 중국 동포다. 이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자 우리 ‘동포(同胞)’다. 이들을 잠재적 피해자로 방치해선 곤란하다. 정부 당국의 실태조사와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김태윤 경제부문 기자 pin2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