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24) 70~80년대 두 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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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큰개자리의 으뜸 별인 시리우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력을 탄생시킨 기준 항성이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아킬레스같이 넓은 가슴을 지닌 청년들을 징집할 때 그들의 시력을 측정하는 별로 유명해졌다.

윤대표씨와 허욱씨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한국 산쟁이를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떠오르게 했다는 점에서 찬란한 시리우스다.

그리고 세계적 클라이머의 모암(母巖)인 알프스 3대 북벽을 함께 오름으로써 한국 산꾼의 클라이밍 기량을 클라이머 수준을 평가하는 국제적인 잣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분명 태양력의 기준이 된 시리우스다.

밝은 눈의 그리스 청년은 시리우스가 두 개의 별임을 볼 수 있었다. 시리우스가 연성(連星)인 까닭이다. 시리우스는 하나의 별에 또 다른 별이 끼고 돌아 더욱 빛나는 두 개의 별이다.

윤대표라는 별을 허욱이라는 별이, 또 허욱이라는 별의 둘레를 윤대표라는 별이 알피니즘을 축(軸)으로 삼아 설악과 알프스에서 미친 듯 돌아갈 때, 두 별은 시리우스처럼 하나의 별로 한국 산악계에 찬연히 빛났다.

두 별 사이에 구심력과 그 반대 방향의 원심력이 팽팽히 맞설 때만 연성 현상이 나타난다. 그 당기는 힘과 미는 힘만큼이나 윤씨와 허씨의 개성은 판이했지만 서로의 힘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연성으로 공전하면서 공존할 수 있었다.

도시락 싸들고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모두에게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반찬이 여러 가지 있을 때 어떤 것부터 먹느냐?"

순서없이 젓가락 놀리는 사람도 있지만 고집있는 친구는 도시락 비우는데도 나름대로 순서를 갖고 있다.

"그야 맛있는 것부터 먹지요."

허욱씨가 선뜻 답했다.

"…맛없는 것부터…."

윤대표씨의 조심스러운 대답이었다.

'까오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허씨는 여러 면에서 파트너 윤씨와 대조적이다.

윤씨 앞에서는 괜히 주눅들던 산악인들도 허씨를 만나면 봄바람에 녹는 눈처럼 부드러워진다.

허씨는 덩치가 큰 편인 데다 '완력등반의 1인자'라는 소문에 어울리는 체력을 가졌지만 얼굴 생김새는 그렇지 않다. 순한 느낌을 주는 이목구비가 검고 굵은 안경테 위로 부드럽게 그려지는 게 허씨의 초상이다.

윤씨가 고주파의 강렬한 성격을 지닌 데 비해 익살스러운 떠버리 허씨는 큰 진폭의 인간성을 지녔다. 설악을 좋아하기는 윤씨 못지않아, 설악의 여러 암릉과 암벽에는 초등자로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허씨는 대학 입학 후 보우회(보성고 산악부 OB회)의 홍석하(현 월간 '사람과 산' 발행인).최효중.이강오 선배들과 함께 설악의 여러 암벽을 누비며 보우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72년에는 설악의 곰길을 초등했고 73년에는 설악의 공룡능선을 암릉릿지로 개척 등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설악의 울산암에 여러 개의 등산로를 열기도 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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