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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브렉시트와 합구필분(合久必分)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가 확정되자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처럼 전 세계가 시끄럽다. 브렉시트와 함께 포퓰리즘, 기존정치에 저항, 세대 간 갈등, 양극화, 이민 등 현대의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문제가 동시에 들어나고 있다. 브렉시트는 세계를 뒤흔들고 세계는 다시 브렉시트를 흔들고 있는 형상이다.

브렉시트의 후폭풍을 우려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의 격랑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브렉시트 가결 후 세계 증시가 총액 약 3000조원이 증발하였다고 한다. 이는 2008년 리만 쇼크 당시 2200조원보다 충격이 더 컸다는 의미이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에 실망한 스코트랜드와 북아일랜드가 EU 잔류를 위해 독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 해체되고 대영국(Great Britain)이 소잉글랜드(Little England)로 축소될 위기에 있다.

영국은 EU 국가 중 아시아 기업이 가장 많이 투지하는 국가로 아시아 국가와 인구 5억 명의 EU 국가 간의 가교와 길목의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영국이 EU 국가 중 2번째 경제 대국으로 자체 신뢰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아시아인이 모국어 다음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영어의 종주국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시아 기업으로서는 EU 진출의 거점국가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과시키자 쇼크가 컸다. 그들은 영국이 당연히 EU에 잔류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작년 10월 영국을 방문 영국의 발달된 금융서비스를 통하여 EU 진출을 기대하고 70조원의 투자를 약속하였다. 영국 런던의 금융시장을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계획한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나라를 분열시키고 제 발등을 찍은 캐머런 총리에 의해 영광의 영국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선 꼴이 되어 세계인의 조롱을 받고 있다. 브렉시트가 통과되었음에도 국론이 통일되지 못하고 재투표 청원이 늘고 있다. ‘영국의 후회(Britain regret)’ 합성어 ‘브리그렛(Bregret)’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영국 사람들이 체리를 심는 노고는 싫어하고 잘 익은 체리만 따고자하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의 성격을 잘 아는 EU에서는 탈퇴절차를 빨리 취하라고 야단이다.

브렉시트를 수습할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캐머런 총리의 사임에 이어 차기 총리 1순위로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돌연 책임을 느끼고 총리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영국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영국을 보면서 지난 달 정동의 영국대사 관저에서 사진으로 만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웃음 뛴 자상한 할머니 얼굴이 생각난다. 여왕은 90세의 탄신을 맞이하여 많은 손님의 축하를 받았다.

여왕의 탄신일은 4월21일인데 영국에서는 날씨가 좋은 6월11일에 생일맞이 행사를 하였다. 여왕은 영연방 등 16개국의 현직 원수로 16개국이 여왕 탄신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진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국대사관에서는 4월 21일 이후 좋은 날을 골라 축하 행사를 한다고 한다.

여왕이 자신의 탄신일을 외국에서 보내는 것이 극히 드문 일인데 1999년 방한하여 73번째의 탄신일을 안동 하회 마을에서 지냈다. 푸짐한 한국 전통의 생일상을 받은 여왕의 만족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는 본래 왕위를 계승권자인 왕세자(Crown Prince)는 아니었다. 여왕은 왕세자의 동생인 요크 공의 장녀로 태어났다. 정상적이라면 여왕은 그냥 일개 공주마마(Her Royal Highness)로 끝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변수가 생겼다. 왕세자였던 백부가 이혼녀로 심프슨 씨와 재혼한 미국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심프슨 부인은 미국 선교사의 딸로 어릴 때 중국에서 생활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할아버지 조지 5세가 서거하였다. 왕세자인 백부가 당연히 왕위에 올랐다. 에드워드 8세였다. 국왕은 심프슨 부인과 결혼을 원하였으나 의회의 반대를 꺾을 수 없었다.

세계 대전으로 나라가 어려운데 국왕이 고집만할 수 없었다. 왕관과 결혼의 양자택일이 필요했다. 에드워드 8세는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을 택하고 왕위를 동생 요크 공에게 물려주었다.
엘리자베스 공주의 아버지 요크 공이 새로운 국왕에 즉위하였다. 조지 6세였다. 그는 마음이 연약하여 형님아래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였고 말도 더듬었다고 한다.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로 통해 조지 6세의 언어 교정 이야기가 소개 된 바 있다.

조지 6세는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국왕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반면에 윈저공이 된 에드워드 8세는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여 프랑스에서 여유로운 신혼생활을 하였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조지 6세가 승하하자 장녀 엘리자베스 공주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1952년으로 여왕 나이 26세였다. 가끔 운명이란 것을 생각해 본다. 영국 왕실에 심프슨 부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인생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여왕도 찬반 논쟁에 휘말려 있다. 여왕은 즉위 후 64년간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 왔기에 이번에도 탈퇴(leave) 잔류(remain)의 어느 쪽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영국의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여왕이 어느 만찬에서 동석한 손님에게 영국이 유럽의 일부분(EU 잔류)이 되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왕이 브렉시트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게 하는 기사였다.

영국인들의 여왕에 대한 충성은 유명하다. 영국이 유로존에 편입되지 않은 것은 여왕의 사진이 들어 있는 파운드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차마 채택할 수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과 영연방의 국가에는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 '여왕폐하에게 승리와 행복 그리고 영광을 주소서(Send her Victorious, Happy and Glorious)' '길이 영국을 통치하소서(Long to reign over us)'라는 여왕에 대한 예찬이 가득하다.

대영제국(British Empire)의 전성기에는 세계의 1/4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큰 국토와 인구를 거느려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다. 과거 대영제국의 여왕폐하 (Her Majesty)에 대한 영국인의 충성이 브렉시트를 통과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천하대세는 오래 통합되어 있으면 반드시 분단되고 오래 분단되어 있으면 반드시 통합된다(合久必分 分久必合)라는 중국 격언이 있다. EU 통합이 오래되면서 당초 EU의 성격이 변질되자 불만이 늘어 난 나라들이 영국처럼 하나씩 빠져 나와 서서히 분리(exit)해 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벌써 넥시트(네들란드 탈퇴) 프렉시트(프랑스 탈퇴)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재정위기와 난민사태 해결을 제대로 못하는 EU의 무기력을 볼 때 EU의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없는 한 EU의 붕괴는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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