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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의 성패 좌우하는 기술, 이웃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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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기자]

귀농ㆍ귀촌을 결심한 사람들이 가지는 수많은 환상 중 으뜸은 시골에 가기만 하면 넉넉하고 푸근한 인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상은 환상일 뿐. 실제로는 마을 원주민과의 갈등 때문에 시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유턴하는 사람이 적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귀농ㆍ귀촌의 성패를 좌우하는 이웃 사귀기 기술, 2년차 귀촌인 이기홍 씨의 경험에서 배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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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ㆍ귀촌 성패 좌우하는 기술 이웃 사귀기

이기홍 씨(68)가 부인 윤진숙 씨(60)와 함께 충남 홍성군 구항면으로 귀촌을 단행한 것은 2011년 8월.

서울서 개인사업을 하며 평범하게 살던 부부는 이씨의 건강이 급작스럽게 나빠지자 사업을 접고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어린 시절 잠깐 동안 홍성군 광천읍에 산 적이 있어요. 그래서 홍성에 자리를 잡자고 생각했죠.” 논을 조금 사고 살 집을 빌린 뒤 홍성으로 이사한 부부는 그때부터 콘크리트 벽에 갇힌 삭막한 도시의 삶 대신 훈훈하고 인정 넘치는 시골의 삶이 펼쳐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인사도 열심히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항상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방인 취급하며 경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홍성으로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였어요.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뒤 마?에 앉아 있는데 온 세상에 우리 부부 단둘만 있는 것처럼 외롭고 막막하더라구요. 어떤 날은 이러다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나서 그냥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재능기부로 이웃에 다가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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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암담하기만 했던 시골 생활이 달라진 것은 귀촌한 지 4개월된 즈음에 생긴 작은 일 때문이었다. 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밤, 옆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부산하게 마을 길을 오락가락하는 것이 보였다.유심히 살펴보니 물을 길어서 옮기는 중이었다. 한밤중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추위에 보일러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서울서 건축과 관련된 일을 했던 이씨는 기계를 만지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던 터였다. 늦은 밤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청하기도 전에 이씨는 선뜻 자신이 보일러를 손봐주겠다고 나섰다.

그 일이 계기가 됐다. 옆집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새로 이사온 이아무개가 마음 씀씀이도 좋고 괜찮은 사람이더라’ 는 말이 퍼지면서 이씨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이씨는 특별히 지어먹은 마음 없이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던 모양이었다.

이후로 이씨는 폐가 수리도 도와주고 보일러도 점검해주면서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장의 권유로 노인회 총무를 맡고부터는 진정한 ‘마을 주민’ 이 되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고 귀촌한 지 이 년째인 지금은 총무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마을 일꾼이 되었다.

“귀촌 후 알게 된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에서도 시골 생활에 빨리 적응하려면 재능기부를 하라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저도 제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 마을 주민들을 도왔더니 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구요.”

문화적 차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그래서 이씨는 새로 귀농하거나 귀촌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활용해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재능이라고 해서 특별한 기술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고령화된 농촌에서는 젊음 조차도 재능이 되곤 한다. 기운이 달리는 어르신들 대신 시간을 내서 힘을 쓰는 일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재능기부가 되는 것이 지금의 농촌이다.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이씨의 충고다.

“예전의 생활을 다 잊어야 시골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어요. 도시에서처럼 살려고 하면 절대로 농촌의 삶에 익숙해지지 않아요. 물론 마을 주민들과의 사이도 가까워질 수 없죠.” 이씨는 자신이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농촌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였다고 말한다. 개인 중심의 삶이 이루어지는 도시와 달리 농촌은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종종 언론 매체를 통해 귀농ㆍ귀촌인과 마을 원주민사이의 갈등이 보도되고는 하는데 그 대부분이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의 일을 봐주는 것이 당연지사예요. 별다른 대가나 계산이 뒤따르지 않지만 으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지죠. 부모 자식이나 친인척 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예요.도시에서는 없는 일이죠. 하지만 이런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마을 주민으로 편입되기도 어려워요.” 이씨가 틈나는 대로 마을 어른들의 집에 들러 보일러 청소도 해주고 수도꼭지도 살펴보는 것은 다 이런 마을의 질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문이다. 부인 윤씨가 겨우내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들의 점심을 해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농번기에는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달려가 품앗이를 자청하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있으면 차로 모시고 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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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씨 부부가 마을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선행을 베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한 걸음뒤로 물러서서 이씨 부부를 살펴보던 마을 주민들도 이제는 이씨 부부에게 마음을 베푼다.

“오늘은 부녀회장이 딸기를 한 바구니 주더라구요. 아침에 수확했는데 맛이나 보라면서. 요즘 딸기가 얼마나 비싼지 아시죠? 정작 당신은 아까워서 한 개도 못 먹는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굳이 손에 쥐어줬어요.” 한 이웃은 로타리 작업까지 끝낸 밭 한쪽을 내놓으며 감자 심어 먹으라고 하기도 했다. 대보름이 가까워오면 찹쌀을 내주고 콩 수확하는 철이 되면 콩을 가져다주는 이웃도 있다. 단순히 시골로 이사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으로 살고자 한 이씨의 진심이 전해진 결과였다.

귀농ㆍ귀촌 선배들이 말하는 이웃 사귀기 요령

소위 ‘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귀농ㆍ귀촌인들이 말하는 비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해야 한다거나, 농사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귀농 멘토를 잘 만나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각종 성공 사례와 귀농지원센터에서 말하는 이웃 사귀기 요령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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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를 만들어라 귀농이나 귀촌을 하기로 결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멘토를 구하는 것이 좋다. 멘토를 통해 지역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마을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그만큼 정착이 쉬워질 수 있다. 귀농을 한 경우라면 농사 기술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멘토가 좋다. 지역 토박이도 좋지만 귀농이나 귀촌한 지 오래돼서 지역 상황도 잘 알고 초보 귀농인의 사정도 잘 살필 수 있는 사람도 좋다.

품앗이에 적극 동참해라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품앗이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다. 마을 일이 있을 때나 이웃집에 손이 필요할 때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에는 더욱 그렇다. 계산하지 않고 이웃의 일을 내 일처럼 돕다보면 신뢰가 쌓이는 것은 금방이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 시골 사람들은 밭에서 거두고 산에서 얻은 것들을 으레 이웃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옆집에서, 앞집에서 감자며 고구마를 가져다줄 때 그저 시골 인심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먹기만 하면 안 된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신 김치 쫑쫑 썰어 부친 김치전이나 읍내 장날 사온 과자 한 봉지라도 이웃에게 돌려주는 것을 잊지 말자.

돈 안 드는 최고의 전략은 인사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처럼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다. 강원도로 귀촌한 모씨는 멀리서 마을 주민 그림자만 보여도 큰소리로 인사를 했더니 주민들이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라도 일단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보자. 특히 농촌이 고령화된 요즘, 어느 지역으로 귀농ㆍ귀촌을 하더라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어르신일 가능성이 높으니 망설이지 말고 인사하자.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라 시골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은 손가락질받기 마련이다. 내 집이니 내 마음이라고 집 안팎치레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가는 이웃으로부터 흉 잡히기 쉽다.

집들이는 이렇게

초보 귀농ㆍ귀촌인이 마을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시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집들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 주민이 되었음을 알리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집들이에 주민들이 모이게 되면 귀농ㆍ귀촌인의 마을 이주를 계기로 주민들이 교류와 단합의 장을 가지게 됐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어 일석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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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는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 형편에 따라 간단한 음료와 다과를 준비하거나 밭이나 들에서 나는 것들로 집에서 준비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만든다. 귀농ㆍ귀촌인 본인이 직접 집들이 행사를 주관하는 것도 좋지만 마을 대표나 명망 있는 귀농ㆍ귀촌 선배에게 행사를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인 집들이지만 개인적인 행사로 치르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 행사로 치르는 것이 더 좋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삼자. 충남 홍성, 전남 무안 등 지역에 따라 귀농ㆍ귀촌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집들이 비용을 지원해주는 곳도 있으니 지자체에 확인해보자.

농민신문사 전원생활 글 이상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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