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이 시점에 해경·정부 패는 게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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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左), 김시곤(右)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그게 맞습니까?”(이정현 의원)

2014년 세월호 참사 닷새 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

“무슨 말씀인지 알겠고요.”(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닷새 뒤인 4월 21일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과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 간 전화 통화 내용이다. 이 의원이 해경의 책임을 묻는 KBS 보도에 대해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주문했음이 드러나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대화가 든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이 의원은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KBS 뉴스9’의 해경 비판에 항의했다.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 책임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한 뒤 “(KBS) 보도에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해경을) 비난한 이유는 그만큼 책임도 막중하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라고 덧붙였다.

언론노조는 이 의원의 발언은 방송 보도와 편성에 직간접적 압박을 가한 것으로 방송법 4조 2항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항에는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방송법 또는 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언론노조는 이 의원이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는 점에서 “언론 보도를 통제하려는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4월 30일 이 의원은 다시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경이 민간 구난업체인 ‘언딘마린인더스트리’를 먼저 투입하기 위해 해군 잠수요원들의 구조작업을 제지했다는 KBS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이 의원은 김 전 국장에게 “나 요거 하나만 살려 주시오”라고 운을 뗀 뒤 “(해군도) 투입이 돼서 다 일을 했다. 순서대로 들어갔을 뿐이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이 “뉴스라인 쪽에 내가 한 번 얘기를 해 보겠다”고 답하자 이 의원은 “하필이면 또 세상에 KBS를 오늘 봤네. 아이고 한 번만 도와주시오”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KBS를 오늘 봤다’는 말의 주어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공개된 녹취록에 대해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검토해야 하는 것이 지금 공영방송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이 의원과 김 전 국장을 방송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30일 “평소에 친분이 있던 사이라 통화 내용이 조금 지나쳤다. 제 불찰이다. 김 전 국장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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