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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이후’를 고민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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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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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브렉시트 우려가 잦아들고 있다. 세계 증시와 외환시장은 브렉시트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 등 진정세다. 급락했던 영국 파운드 값은 브렉시트 이전보다 더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멋쩍게 됐다. 헤지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나 로런스 서머스 교수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내심 크게 당황하지 않을까. 세계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타격을 입는다, 세계 금융시장은 ‘검은 금요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예언이 틀릴 공산이 커졌다. 금융시장에 관한 한 ‘검은 금요일’로 그쳤다. 영국과 유럽연합(EU) 간 감정의 골이 때때로 이벤트성 악재를 낳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큰 고비는 넘겼다.

각국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한 덕분이 크다. 영국의 글로벌 경제 비중이 크지 않은 까닭도 있다. 영국 입장에선 성가신 EU 규제가 철폐되면 경제가 오히려 더 나아질 수도 있다. 이런저런 긍정적 요인들을 같이 감안하면 처음부터 브렉시트를 그렇게 비관할 일이 아니었지 싶다. 하지만 브렉시트의 충격은 단순한 경제지표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가지수나 환율, 국내총생산(GDP) 등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보다는 세계 경제의 판이 바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게 더 큰 충격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퇴색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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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세계화와 작은 정부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부터 정착된 글로벌 경제질서다. 세계화를 통한 공동 번영이 모토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여기에 대한 도전이다.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를 택한 건 일과 삶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불안은 세계화의 후유증과 부작용 중 하나다. 포스트(post) 신자유주의에 대한 고민과 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따지고 보면 반(反)세계화, 신자유주의 비판은 약소국과 힘없는 진보 진영의 단골 메뉴였다. 강대국이나 기득권층의 몫이 아니었다. 세계화가 번영을 위한 만병통치약이라는 강대국의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는 건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세계화가 오히려 사람을 불행하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극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세계화의 진전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 세계화는 시장 개방과 동의어라서다. 당연히 경쟁이 심해지고 빈부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픽>이 의미하는 바다. IMF에 따르면 62년부터 40년간 세계의 경쟁 지수는 세 배 가까이 높아졌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경쟁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양극화도 심화됐다.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90년대 중반부터 심화된 것도 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계화가 지속됐던 건 역설적이지만 ‘약자’들의 메뉴였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얘기다. 세상은 이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판치고 있다. 우리가 피한다고 비켜갈 수 있는 풍랑이 아니다. 오히려 같이 묻어가지 않거나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깊은 수렁으로 낙오하는 판국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세계화에 적당히 묻어가면서 실리를 챙길 수밖에.

하지만 이런 세상이 바뀌고 있다. 브렉시트가 단적인 사례다. 특히 영국은 세계화의 원조국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세계화의 뿌리가 제국주의 식민지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70년대 후반 작은 정부와 규제 완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전파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그런 국가가 세계화에서 이탈하고 있는 거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도 변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겪었듯이 IMF는 냉혈한 이미지다. 성장을 위해 불평등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2년여 전부터 “평등은 지속 가능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을 바꿨다. 얼마 전에는 자신들이 전파하던 신자유주의 방식이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실토했다. 다음 차례는 미국일 수도 있다. 변할 것 같지 않던 영국이 변했으니 미국도 변하지 않을 거라 단정하기 어렵다. 대선을 앞두고 세계화와 양극화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차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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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IMF·www.wid.world

어떻든 불안을 극대화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지금의 세계화는 변하지 싶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 움직였던 세계 경제가 보호주의나 고립주의로 변한다면? 그래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세계 무역증가율이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더 낮아진다면? 그 자체가 우리에겐 엄청난 충격이다. 우리는 세계화 학교의 최우등생 국가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기반한 수출 주도형 성장 모델은 그중 하나다. 세계화가 아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생존 전략이자 성공 공식이었다.

이제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게 첫 번째다. 양극화를 완화하는 새로운 세계화 룰이 만들어질 때 적극 참여하는 것도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상시적인 리스크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도 필수다. 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그래서 적절했다. 이보다 중요한 건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이다. 우리 경제의 ‘새판 짜기’라서다. 기업 부실을 정리하는 재무적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사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웨덴처럼 경쟁을 촉진하면서 양극화를 완화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그래픽>. 영국보다 우리가 더 문제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김 영 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