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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간 머리만 만진 미용사 장현경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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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숯불을 이용하던 퍼머머리시절부터 현재의 컴퓨터 퍼머넌트시대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도록 「머리 만지는 일」로 살아온 미용사 장현경씨(61). 10대소녀시절부터 동경해온 화려한 연예인의 꿈을 외국 미용전문잡지들을 구해보며 달래다가 마침내 28살때(50년대초·환도후 서울에) 미장원을 개업했다. 그의 「천직같은 미용사의 길」은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딸에게도 이어져 그야말로 미용사로서 일가를 이룬 셈.
현재 서울시내 명동과 이대앞에 세개의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어 성공한 미용인으로 꼽히면서도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 유감스럽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으로 고객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베풀고 있지만 웬지 미용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그를 실망시키는 예가 많아서 잠시 양장점 경영으로 길을 바꿔보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최근 30여년간 퍼머넌트만해도 스모키·스트레이트·핀컬·나이애가라·새비지 등 수많은 종류가 유행하는 동안 고객들의 미용에 대한 관심과 요구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장씨. 예컨대 머리를 안쪽으로 말아 넣으라거나 바깥쪽으로 말아 올리라는 정도가 고작이던 고객들이 이제는 각자의 개성과 얼굴형에 따라 머리길이도 앞·뒤·옆은 각각 어떻게 해달라는 등 몹시 구체적으로 주문한다고 말한다.
장씨가 미용사로 일하기 시작하던 무렵만 해도 금남의 지역이던 미용실은 이제 남자고객이나 남자 미용사가 모두 예사스럽게 느껴질 정도가 돼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고.
특히 「숯불 퍼머」시절에 자칫 실수로 머리를 덴 흉터가 생긴 40대이상의 고객을 온도·습도·시간 등이 자동으로 조절되는 컴퓨터 퍼머넌트기구로 머리손질해 줄때면 문득 향수조차 느낀다고 한다.
그는 매주 10만원어치가 넘는 국내외 미용전문지를 구독하면서 40여명의 미용사들에게 새로운 유행과 머리손질법을 교육시키는데, 그때마다 「친절·청결·양보로 고객들이 편안함을 느끼게할 것」을 강조한다.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지만 나는 한가한 시간에만 내 머리를 손질한다』는 장씨의 월수입은 「탐나는 옷은 부담없이 사 입으면서 50만원가량의 용돈을 쓸수 ,있을 정도」.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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