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자학적 선택’에 날아간 ‘옐런의 꿈’‘아베의 희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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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3 면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창설을 주도했던 독일·프랑스 등 6개국 외무장관들이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영국은 브렉시트 절차를 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왼쪽부터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독일), 디디에 렝데르스(벨기에), 파올로 젠틸로니(이탈리아), 베트 쿤더스(네덜란드), 장 아셀보른(룩셈부르크), 장마르크 에로(프랑스) 외무장관. [AP=뉴시스]

영국 버밍엄과 선덜랜드. 두 곳은 맨체스터와 함께 19세기 산업혁명을 선도했다. 버밍엄은 섬유산업, 선덜랜드는 유리와 조선업의 허브였다. 피터 싱클레어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과 교수는 두 곳을 “자유무역론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그럴 만했다. 두 도시가 생산한 제품을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많이 팔아야 했다.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인간마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 모든 나라가 행복해진다는 게 자유무역론의 핵심. 그런데 23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버밍엄과 선덜랜드는 EU와 영국 사이에 ‘장벽 쌓기’를 선택했다.


20세기 초엔 독일이 버밍엄·선덜랜드산 제품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무역론에 반발했다. 독일은 “산업화 초기엔 국가가 나서서 장벽을 쌓아 자국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0여 년 만에 두 도시가 자유무역론과 다른 선택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U 통합 전문가인 안병억 대구대 교수는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해 본격적인 세계화를 추진하기 시작한 1979년 이후 두 도시의 경제가 나빠졌다”고 말했다. 실제 두 도시의 실업률은 10~14% 수준이다. 영국 대도시 가운데 최악이다. 두 도시의 자동차·선박·유리공장들이 대거 저임금을 좇아 신흥국으로 빠져나갔다.

BOE·ECB “행동 나설 준비 돼 있다”세계화 덕분에 신흥국 산업화는 빠르게 이뤄졌다. 산업화의 글로벌화인 셈이다. 동시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말한 ‘불만의 세계화’도 이뤄졌다. 글로벌화의 그늘진 곳인 신흥국 저소득층과 선진국 하층민이 동시에 불만을 품게 되는 현상이다. 불만의 세계화가 역사적 반전을 낳았다. 자유무역주의 고향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바람은 사실상 잉글랜드 전역을 휩쓸었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지인 수도 런던에서도 브렉시트 지지율이 40%를 넘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브렉시트 지지율이 20~30%”일 것으로 봤던 곳이다.


고향의 반란은 강렬한 파장을 낳기 시작했다. 미국 LA타임스는 “벨기에 브뤼셀 싱크탱크인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의 프레드릭 에릭손 소장이 ‘글로벌화 시대가 분명히 끝났다’는 말을 했다”고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여태껏 신흥국의 세계화 저항은 무수히 많았지만 에릭손처럼 세계화의 종언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세계화의 핵심인 자유무역론의 고향인 영국, 특히 잉글랜드 사람들의 선택이 세계에 무겁게 다가온다는 방증이다.


그래서인가. 영국의 국민투표 직후 하룻밤 새 글로벌 주식의 시가총액 2조5465억 달러(약 3000조원) 정도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글로벌 외환 시장도 요동쳤다.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급락한 반면 달러화와 엔화 값이 뛰었다. 주식과 통화 시장의 요동은 금융회사의 뜻밖의 파산과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영국은행(BOE)의 마크 카니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재닛 옐런 등이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위기 순간엔 ‘시장에 돈으로 홍수를 일으켜라!’는 중앙은행의 오랜 금언을 따른 것이다.


글로벌 시장 충격, 예상보단 양호글로벌 시장의 충격은 예상치보단 덜했다. 국민투표 전 몇몇 전문가는 시가총액 감소가 7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영국 파운드화 가치도 10% 넘게 추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톰슨로이터는 “글로벌 시장 충격이 최악의 수준은 아니었다”며 “하지만 영국과 EU의 실물경제 둔화가 낳을 충격은 아직 가시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민투표 사흘 전인 20일 공개한 브렉시트 분석보고서에서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는 2018년까지 하강한다”고 전망했다. 충격이 가장 큰 해는 내년이다. IMF는 “2017년 영국 성장률은 최악의 경우 -0.8%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충격이 크지 않더라도 내년 성장률은 1.4%에 그친다. 브렉시트가 없었다면 내년 영국 경제는 2.5% 정도 성장할 참이었다.


IMF 보고서 발표 직후 브렉시트 캠페인을 이끈 보리스 존슨 영국 보수당 의원은 “과장법으로 우리(영국인)를 겁주려 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반(反)브렉시트 선봉이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IMF 예측은 영국 내 싱크탱크나 글로벌 투자은행의 예상치와 견줘 비관적이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평”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경기 둔화가 영국 국경 안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란 점이다. 경제분석회사인 IHS글로벌인사이트는 “브렉시트 파장이 EU의 내년 성장률도 1.8%에서 1.5%로 낮출 전망”이라고 밝혔다.


영국을 포함한 기존 EU의 경제 규모가 16조 달러 이상이다. 미국(약 18조 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무엇보다 EU는 미국·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다. 경제 규모도 브렉시트 파장이 거대한 글로벌 금융과 교역 네트워크를 타고 퍼져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브렉시트를 “글로벌 교란요인”이라고 묘사했다. 주요국 경제정책 시나리오를 모두 뒤흔들어 놓아서다.


우선 옐런 Fed 의장은 ‘통화정책 정상화’를 또다시 미뤄야 할 참이다. 그는 올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양적완화(QE)와 초저금리 같은 비정상정책을 거둬들이는 프로그램을 본격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미 실물경제가 기대만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다 브렉시트 사태가 엄습했다. IHS는 “Fed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2017년 안에도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4년 QE 확대 효과가 사라지는 일을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다. 브렉시트 탓에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인 일본과 독일 국채, 금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엔화 값이 24일 장중 한때 달러당 99엔 선까지 솟구쳤다. 톰슨로이터는 “2014년 QE 확대로 시작된 엔저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평했다.


옐런·드라기·카니 29일 회동, 대응안 논의엔저는 구조개혁과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이 시원찮은 상태에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지지대다. 이런 와중에 엔고는 아베의 희망인 ‘잃어버린 20년 탈출’마저 어렵게 한다. 아베는 엔저 흐름을 복원하기 위해 일본은행(BOJ)을 또다시 동원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긴급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긴급자금 투입뿐 아니라 여차하면 외환 시장 개입도 하겠다는 뜻으로 글로벌 시장에선 받아들여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블룸버그는 “구로다가 7월 29일 통화정책회의에서 마이너스를 더욱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글로벌 공동 대응도 가능하다. 옐런·드라기·카니가 이달 29일 전 ECB 총재인 장클로드 트리셰가 주관하는 콘퍼런스에서 회동한다. 블룸버그는 “이 자리에서 브렉시트 공동 대응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올 전망”이라고 전했다. 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9월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다. 브렉시트발 실물경제 충격이 서서히 나타날 순간이다. CNBC는 “G20 항저우 회의 최대 의제가 브렉시트일 수밖에 없다”며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이 공동 대응의 핵심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라고 전했다.


근현대 역사에서 영국은 현재 상태(Status quo)를 유지하려는 쪽이었다. 그들은 최초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식민지를 선점한 뒤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 했다. 이런 그들이 이번엔 현상을 깨는 선택을 했다. 톰슨로이터는 전문가의 말을 빌려 “영국인의 선택이 경제적인 측면에선 자학적(Self-torturing)”이라고 묘사했다. 자존심과 EU 분담금 절약, 이민 억제 등을 위해 너무 많은 경제 손실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80년 이후 자신들이 주도해 온 시장 개방과 통합 등 글로벌화를 부정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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