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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내려가는 벼 어선동원해 건져|본사기자들이 본 수해의 들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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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천만섬 대풍이 3천8백여만섬으로 줄었다. 잇따른 태풍과 가을장마가 눈앞의 「대풍」을 수확 직전에 앗아갔다. 3천8백여만섬만이라도 불행중 다행. 작년 생산량엔 못 미치지만 평년작은 훨씬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피해가 막심해 농민들의 실망도 크다.
경기와 충남 서부지방의 황금벌판에서는 지난 10일의 집중호우가 l천4백63ha의 베어둔 벼를 서해로 쓸어갔고, 영·호남일부 곡창지대는 6일의 태풍과 늦장마로 벼가 물에 잠기거나 쓰러져 많은 감수가 예상되고 있는 실정.
본사 전국 취재망을 통해 수해들녘을 돌아봤다.
◇경기·충청=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당률·단산· 우산 등 충남서부 곡창지대와 평택·화성·안성 등 경기서부지역.
지난 10일의 집중호우로 당률천·발안천·진위천·오산천 등이 범람하면서 하천변 논바닥에 베어 말리던 볏단의 60∼70%가 서해로 휩쓸려 들어갔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겠소. 1백여가마를 바라보던 베어둔 볏단이 깡그리 떠내려가고 말았답니다.』3천여평의 논에 깔아둔 벼를 송두리째 유실한 충남당률군 당진읍우두리 김대길씨(46)는 가슴을 쳤다.
당률읍을 비롯, 4개 읍·면에 걸친 우두리앞 3천여ha의 「채운 들」은 호우피해가 워낙 심해 정확한 피해집계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려야 할 정도.
읍관계자는 우석리 등 5개 마을 피해만도 15만평에 베어놓은 쌀 3천여가마(1억8천만원)분의 벼가 떠내려간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90만평의 베어놓은 벼가 침수돼 대부분 싹이 나오는 바탕에 이를 말려 찧는다해도 싸라기쌀 등 간접피해가 4천여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있다.
서산군태안읍 장산·평천·상우·인평리 등 4개 마을도 비슷한 실정. 30여만평의 논에 베어둔 쌀 4천5백여가마분의 벼(2억7천만원)가 몽땅 휩쓸려 간 것으로 군관계자는 보고있다.
장산리 김복선씨(54)는 『10일 밤부터 온 호우로 논바닥 수위가 가슴팍까지 차 90%이상 베어놓은 들판의 벼가 모두 떠내려갔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화성군향남면상신1리 발안천이 넘쳐 8천여평의 볏단을 몽땅 떠내려 보내고 3만여평이 침수, 64가구 중 30여가구는 쌀한톨도 건지지 못하게 됐다고 한탄했다.
이장 김한직씨(45)는 『10일과 12일의 폭우로 8천여평의 논바닥에 깔아둔 벼가 휩쓸려 줄잡아 쌀 1백50가마를 잃었다』며 그래도 남은 벼를 구하기 위해 아직도 범실거리는 발안천을 지켜보며 마을사람들과 함께 무논에 일부 남아있는 볏단을 밤새워 옮기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화성군정남면귀내리 역시 3천여평의 볏단이 황구지천으로 떠내려가고 1만6천평이 침수. 이 마을 박상현씨(29)는 『지난 6일 품삯 10만원을 들여 1천4백평의 벼를 베어 두었더니 10일의 호우로 60%가 떠내려 갔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베어두지나 말 것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평택군현덕면권관리등 우산호 주변 1백여 어민들은 11일부터 13일까지 화성·평택·안성에서 떠내려 온 벼2천여 가마분을 건져내 우산호관광지 일대가 온통 벼로 가득했다. 권관리 어촌계장박춘발씨(63)등은 『우산호수문이 11일 상오6시30분쯤 열리면서 볏단이 바다로 떠내려가 이 곳 어민들과 함께 30여척의 어선을 띄워 건졌으나 90%이상이 그냥 바다로 흘러갔다』고 했다.
◇경남·북=영남의 곡창지대 김해평야는 침수와 도복으로 인한 감수피해와 미질저하로 인한 간접피해가 크다. 지난 6일의 태풍 브렌다로 7천여ha의 벼가 쓰러진데다 10, 11일의 호우로 벼를 베어 깔아둔 3만여ha의 논에 4∼5일씩 물이 괴어 벼에서 싹이 돋는 바람에 5%의 감수와 5%의 간접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
무논에서 벼를 건져내던 김홍배씨(49·김해시삼정동267)는 『9백평의 논에서 벼 30가마는 충분히 수확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20가마를 건지기도 힘들게 됐다』며 안타까와했다.
경북월성군 양배면 어일리들판 1백60ha도 올 가을 장마에 세번이나 침수됐고, 태풍 브렌다가 동해안을 스쳐갈 때 사흘낮밤 장대같은 비를 내려 피해가 막심.
1천평의 논에서 해마다 벼1백20가마를 수확했던 정연찬씨(54· 어일리)는 『막상 탈곡하고 보니 절반농사밖에 안 됐다』고 한숨.
최조학씨(54)는 『베어서 논두렁에 쌓아둔 3마지기 벼가 고스란히 떠내려간 데다 나머지 15마지기 벼도 쓰러져 썩는 바람에 사료로 밖에는 쓸 수 없게 됐다』고 푸념했다.
임복우씨(59)도 『14마지기의 벼에서 하얗게 싹이 돋아 싸라기쌀 밖엔 나오지 않게 됐다』고 발을 굴렀다.
또 월성군천북면모아리주민들은 앞으로 열흘정도는 햇볕을 더 쬐어야 수확할 수 있는데 침수된 논에 벼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며 13일부터 서둘러 베기 시작했다.
◇전남·북=중부지방처럼 폭우에 벼가 떠내려가는 등 졸지에 일어난 피해는 거의 없으나 잦은 비와 태풍으로 벼가 제때 여물지 않아 김제와 나주평야를 비롯한 해남·강률·장흥·보성·고흥 등 호남곡창지대 역시 미질저하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은 실정.
나주군 남평면오룡리 이경환씨(38)는 『7천평의 논에서 벼 1백40가마는 수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7차례의 태풍과 폭우로 70가마도 건지기 어려울 것 갈다』고 했다. 이씨는 그나마도 쭉정이가 많아 쌀로 도정하면 싸라기가 많이 나올 것 같다며 걱정.
57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10만여평의 논에 벼를 심었으나 기상이변으로 40%의 감수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했다.
고흥군은 올해 1만2천6백17ha의 논에서 36만7천섬을 수확할 예정이었으나 점암면과 포석면등지의 1백5ha가 지난 6월 유실돼 2억원의 피해를 냈다.
전북지방은 올 여름 7차례의 태풍과 잦은 호우에도 작년보다 23만5천섬이 많은 6백13만2천섬을 생산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찾은 침수로 3%의 저질미발생이 불가피해 약 9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본사 수해지구 임시 취재반
◇경기·충청=김국후·김주만·김정배
◇경남·북=이용우·허상천
◇전남·북=모보일·박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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