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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컸던 개도국 실속은 없었다|IBRD·IMF총회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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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회의」를 일단은 별탈없이 치러냈습니다. 열흘 남짓 지켜봤던 이번 총회의 의미를 한번 짚어봅시다.
-비록 이번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고는 해도 역시 「돈 많은 나라」 몇몇만이 판을 치는 회의가 바로 IBRD-IMF총회지요.
개최국인 우리로서는 경제적으로 뚜렷한 「실리」를 얻었다기 보다는 대내외적으로 정치적인 의의가 더 컸던 모임이었습니다.
이번 서출총회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목소리가 컸었다는 소리를 들은 다른 개도국들도 뚜렷한 경제적 실리를 못 얻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결국 서울총회의 의의는 세계1백47개국 5천여명의 경제계인사들에게 한국의 실상을 보여주었고, 또 88서울올림픽 등 대규모국제행사를 앞두고 이만한 대규모회의를 무난히 치렀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면에서의 서울총회 핫 이슈는 역시 개도국 외채문제였어요. G24를 비롯한 개도국들의 목청은 IMF창설 40년동안 가장 컸었다는 겁니다.
-페루재무장관은 노골적으로 IMF무용론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기구창설까지 역설했으니까요. 마지막 차례의 기조연설에서는 외채와 주권을 바꿀 수 없다면서 채권기구의 간섭을 비난하더군요.
-마치 부실기업사장과 주거래 은행자들이 편을 나눠 싸움만을 벌이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개도국외채가 핫 이슈로 등장한 총회를 국민들이 지켜보면서 외채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우리가 새겨두어야 할 의의가 아닐까요.
-이번 총회의 참가자들이 예외없이 한국이 외채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라고 칭찬(?)을 했지만 취재기자 입장에서는 그 말이 결코 기분좋게 들리지를 않더군요.
뒤집어 말하면 자기들로서는 한국이 그만큼 돈 떼일 염려없는 「좋은 시장」이라는 얘기에 불과한 것이고 빚은 빚이니까요.
-이번 총회에서도 외채가 많은 중남미나 아프리카 대표들이 받은 「설움」을 남의 일로만 돌릴 수 없겠구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미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들의 대표들의 당당한 연설이나 기자회견과 빚 많은 나라들의 태도는 정말 대조적이더군요. 예컨대 「베이커」 미재무장관의 연설 때 총회장을 가득히 메웠던 사람들이 중남미·아프리카대표의 연설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 썰렁한 느낌마저 주었지요.
-이번 총회의 우리측 준비는 각국 참가자들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았어요. 그러나 총회장주변이나 묵고있는 호텔의 경비가 철저한 것은 그렇다 쳐도 너무 눈에 띄지 않았느냐 하는 의견도 있었고 동시통역도 전문용어를 몰라 미숙한 점이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번 총회에서 우리국민들은 충분히 친절했다고 봅니다. 「지나친 환대」 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총회참석을 계기로 참석자의 3분의2가량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선전은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반대의 지적도 많았습니다. 한국측 대표 한사람은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은 개도국인줄 알았더니 이제 완전히 선진국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여 적지않이 당황했다』고 말하더군요.
-고층빌딩과 화려한 호텔시설만 보고서 한국의 실력을 과대평가했을 가능성도 사실 없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지난번 미국과의 수입규제분쟁 때 과잉홍보로 인한 홍역을 치렀듯이 또 한차례 우리 스스로 자충수를 둔 셈입니다.
-이번 총회개최를 통해 기대했던 외화수입은 어땠습니까.
-당초 2천만달러로 예상했었으나 정부당국 집계로는 1천9백만달러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역을 물었더니 확실치 않으니 보도를 말아달라고 부탁하는걸 보면 그보다도 적은 수준인 모양입니다.
-기대에 못 미친 첫번째 이유는 예상치 못했던 가을비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안타까와 했습니다.
-이원홍문공장관이 주최한 외신기자를 위한 리셉션의 경우 비 때문에 3차례나 연기하던 끝에 결국 덕수궁이 아닌 대한생명빌딩으로 옮겨서 치러야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기대했던 이태원쇼핑은 총회막바지에 가서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호텔과 일부시내상가 지역을 제외하고는 총회참석자들의 씀씀이가 워낙 알뜰해서 별로 실속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특히 관광업계의 경우 IMF때문에 평소의 국내관광과 일본인관광의 발이 묶인 탓으로 관광시즌에 대목 장사를 놓쳤다고 불만도 적지 않았습니다.
-공항표정은 어땠습니까.
-워낙 많은 VIP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정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부수상이상에 대해서만 VIP대접을 해주기로 함에 따라 「볼커」 미국중앙은행총재같은 경우는 출국 때 미대사관측 요청에도 불구하고 VIP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미국측의 철저한 경호도 이야기거리였습니다. 「베이커」재무장관일행이 탄 특별기는 이례적으로 국내선공항으로 들어오면서 일체의 접근을 불허했습니다.
-미국대표단의 사무실경호 역시 마찬가지여서 취재를 하러갔다가 혼이 났어요. 경호원이 복도길목을 막아서서 『정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보내긴 하되 내보내줄 수는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어요.
-마지막 꼭 짚고 넘어갈 점도 서울총회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열·과잉경쟁이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총회장에서 어느 대학교수를 만났더니 『신문들이 왜 이 야단들이냐. 별의별 사람들과의 시시콜콜한 인터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까운 지면에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으니 아예 경제신문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공박을 해대는 통에 얼굴이 뜨겁더군요.
-어느 금융계 인사도 경제회의를 너무 정치·사회적으로 신문이 몰고 가는 느낌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했습니다.
-세계은행관계자는 지금까지 총회개최이래 한국신문들처럼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연일 대서특필하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문공부나 재무부 등 정부당국자들은 이번 서울총회에 대한 국내언론의 보도태도에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들이었습니다.
-진짜수고는 우리측 총회사무국 직원들이었습니다.
-86·88등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여러면에서 이번 서울총회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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