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불발된 밀양 현지에 기자가 직접 가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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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김해공항 확장 방안을 발표한 21일 오후 3시쯤 찾아간 경남 밀양시청. 시청 1층 입구 우측 구석에서 한 40대 공무원이 담배를 피우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공항 결과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공무원이 "나라에서 밀양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남부권 신공항 입지를 정하지 않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정하자 공무원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김진출(58) 밀양시 나노미래전략과장은 "갈수록 낙후돼 가는 밀양에 정부가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며“신공항이 들어와 밀양이 국제도시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손차숙(56·여) 밀양시 하남읍장은 "2009년과 2010년에 신공항 유치활동을 했고 2011년 백지화됐다. 또 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며 "다양한 지역 발전 사업을 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쭉 빠진다"고 말했다.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한 아쉬움의 탄식은 밀양시내 곳곳에서도 터져 나왔다. 시청이 있는 교동에서 만난 시민 손은숙(45·여)씨는 "농업 위주의 도시에서 도농 복합 도시로 발전할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산이라니"라고 했다. 이기형(68)씨는 "전에도 무산된 적이 있어서 사실 담담하다. 아쉬운 것은 신공항이 들어오면 세수가 늘어나고 그러면 결국 주민 복지가 좋아질 것 아니냐. 그게 안 된다는 게 섭섭할 뿐이다"고 말했다. 40대 초반의 한 주부는 "신공항이 생기면 일자리가 생기고 젊은 사람들도 밀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부가 이를 감안해주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쯤 찾은 남부권 신공항 입지 예정지인 밀양시 하남읍.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기쁨과 탄식이 뒤섞여 있었다. 신공항 건설이 무산됐다는 소식에 한숨을 쉬는 주민이 있는가 하면 "그냥 하던 농사일이나 잘하면 된다"며 반기는듯 한 말을 하는 주민도 있었다.

무산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밀양시내와 하남읍 어디에서도 신공항 환영 또는 신공항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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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읍 주민 신순자(60·여·백산리)씨는 "다들 된다고 주민들 마음만 들뜨게해 놓고 이게 무슨 일이냐. 심란해서 농사일도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이은희(70·백산리)씨는 "더 이상 신공항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땅값이 오르고 농사일을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기대했는데"라고 말했다.

불발됐지만 아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을 원한 하남읍 한 40대 주민은 "공항이 들어오면 소음이 생기고, 땅이 없는 소작농들은 비싼 땅 값에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 이런 생각과 걱정을 하던 주민이 동네에 꽤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남읍에서 만난 50대 주부는 "자연을 훼손해가며 굳이 왜 공항을 만들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신공항 건설 무산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밀양=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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