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라도 풍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대정현목사의 권유로 구한말 고종21년에 비로소 사람이 옮겨가 터를 잡았다는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모슬포 포구 너머 거친 물결 속에 묻힐 듯 말듯 새끼손톱만큼이나 작은 그 섬은 사시사철 진초록 빛으로 덮여 있어 더 가 보고팠다.
제주에 살면서도 벼르고 벼르다가 겨우 얼마 전에야 그곳엘 갈 수 있었다. 거대한 노도에 압도되어 자신의 존재가 보잘것없음에 가슴을 떨며 한시간여의 뱃길을 가서 섬에 당도했다. 그러나 섬은 철저하게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부딪쳐왔다.
섬을 한바퀴 돌았지만 배를 댈 수 없었다. 깎아지른 벼랑으로 성을 두른 섬에는 포구가 없었다. 파도가 벼랑을 때려 폭포수 분말 같은 물결을 날리며 뭍으로 오르는걸 한사코 훼방놨다. 바람막이를 찾아 닻줄을 벼랑에 걸었을 때 너나 없이 멀미에 시달린 얼굴들은 기가막힌 표정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잔디밭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마침 함께 간 일행들은 카메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선생님은 큰 호의를 베풀어 섬에 처음 온 나에게 섬이 내비치는 장관과 철늦은 수국 등을 그의 파인더에 잡은 후 보여주곤 했다. 넉넉잡아 한시간이면 일주할 수 있는 그런 좁은 공간에 온 우주의 아름다움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며 펼쳐지곤 했다. 문득 그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마라도가 실제의 마라도일까 하는 우스운 의문이 떠올랐다. 그의 카메라는 환상의 섬을 그리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아름다운 것만으로 전부일 수 있을까. 그의 카메라에는 시멘트를 제멋대로 이겨 붙인 선착장의계단도 없었고, 포구를 만든다고 아득한 벼랑을 부숴 버리는 공사장의 뼈대 굵은 장비며 어디에나 무덤을 이룬 쓰레기더미들, 해안가에 둥둥 떠다니는 폐품들은 아예 비춰지지 않고 있었다.
거기 햇볕이 최대치의 복사열로 지표를 달구는 한낮, 검은 박쥐우산을 펼쳐든 섬의 남정네들이 그저 한가로이 붙박혀 있는 동안 해녀들은 분주히 물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카메라는 그런 마라도를 눈치채지 못한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그건 부정적이고 추한 모습이니 무엇보다 우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글쎄, 물한방울 생산하는 것조차 마다하는 섬에 굳이 들어앉아 섬을 쪼개는 인간의삶 자체를 젖혀두고 낚은 그의 마라도가 보는 이의 눈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궁금하다.
한림화<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