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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권력분산론 쏟아지지만, 열쇠는 결국 대통령 의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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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6 면

“나 이승만은 국회의장의 자격으로 이 간단한 예식으로서 서명하고 이 헌법이 우리 국민의 완전한 국법임을 세계에 선포합니다.”


1948년 7월 17일 오전 10시18분 국회의사당(옛 중앙청 건물). 이승만 당시 국회의장이 붓을 들어 서명하자 감격에 찬 박수가 홀을 가득 메웠다. 내후년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헌정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헌법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 9차례 고쳐졌다. 9번 중 6번은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주도했다. 60년 3차 개헌(의원내각제)과 4차 개헌(소급입법), 그리고 87년 9차 개헌(직선제)만을 국회가 이끌었다. 그러나 3차와 9차 개헌은 4·19 혁명과 6월 항쟁의 산물이었다.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국회가 수용한 결과였다. 4차 개헌은 3·15 부정선거 관련자 및 이승만 정부의 부정 축재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소급입법 근거 마련이 주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13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회사에서 “개헌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불을 지핀 개헌론이 현실화된다면 정치권과 국회가 주도하는 진정한 의미의 첫 개헌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세균계가 아닌 우윤근 전 의원을 사무총장에 발탁한 것을 두고도 정치권에선 “적극 개헌파인 우 전 의원을 앉힌 것을 보니 개헌에 대한 정 의장의 의지가 읽힌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국회 의결정족수)과 ‘전체 유권자의 과반 찬성’(국민투표)은 개헌 절차상의 필요조건이다.


지난달 중앙SUNDAY가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210명 중 173명(82.3%)이 개헌에 찬성했다. 지난 15일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515명)의 69.8%가 개헌에 공감했다.


실제 개헌까지는 지난(至難)한 과정이 이어지겠지만 분위기는 어렴풋하게나마 잡혀가고 있다. 개헌론자인 박형준 전 국회사무총장은 “예전에는 개헌에 부정적이던 인사들도 최근에 만나보면 개헌 쪽으로 많이 기울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현행 헌법으론 더 이상 어렵다’는 공감대가 퍼져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이사장 우창록)는 2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함께 ‘87년 체제의 성과와 한계’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이 자리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계점에 이른 ‘87년 체제’의 극복을 위해 새 헌법을 모색하자”는 주제발표를 한다.


역대 국회마다 개헌론은 있었다. 2004년 17대 국회 때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은 ‘권력집중 완화’를 주장하며 “제2의 제헌국회를 만들자”고 했다.


18대 국회 때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9대에선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각각 헌법자문위를 설치해 개헌안을 내놨다.


이런 노력들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는 정권 초기엔 현직 대통령이 개헌론을 틀었고, 정권 후기엔 유력 대선 후보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경제위기 극복이 급선무”라며 개헌에 반대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2013년 “민생이 어렵고 남북관계도 어려운데 개헌을 논의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 대선과 총선 같은 해 실시’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두 유력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집권 4년차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기했던 개헌론도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침묵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대선을 1년6개월 남겨둔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개헌론이 불발에 그친 건 ‘어차피 다음에 내가 대통령이 될 건데, 권한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개헌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력 차기 주자들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여야 없이 대세론을 형성한 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개헌에 원론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와 신 3당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정치권에서 “협치와 협력만이 살길”이란 인식이 여야 없이 퍼져나간 것도 개헌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문제는 ‘새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고, 언제 어떻게 개헌을 할 것인가’다. 정치세력에 따라 또 개별 정치 지도자에 따라 입장이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픽 참조> 전문가들은 개헌론이 열매를 맺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 ▶국민여론의 지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조정 문제를 3대 변수로 꼽는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론의 기어를 쥐고 있다”


현직 대통령은 ‘개헌 논의의 기어 박스’로 일컬어진다. 기어를 움직여 개헌론에 속도를 더 붙일 수도, 반대로 제동을 걸 수도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물꼬를 터주고, 국민에게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국회에서 개헌 논의를 해줄 것을 공식적으로 제안하면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 이후 개헌론이 불거질 때마다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지난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했던 “지금 개헌을 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겠느냐”는 발언이 가장 최근의 언급이다. 이번 정세균발 개헌론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 역시 “드릴 말씀이 없다”(15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였다.


하지만 김형오 전 의장은 “개헌론이 국민적인 대세로 자리 잡을 경우 박 대통령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은 자신의 공약이지 않은가”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11월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선 2008년 7월 싱가포르 방문 때도 기자들에게 “개헌은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고 했다.


박형준 전 총장은 “박 대통령이 개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친박이 알아서 개헌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진박’(진실한 친박)으로 불리는 헌법학자 출신 정종섭 의원이 최근 “올 연말까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개헌파에 가세했다. 그동안 친박계 내부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과 이원집정부제 도입을 통한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 카드가 거론돼 왔다.


친박계가 지지하는 후보가 기대만큼 선전하지 못해 대선구도가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임기후반 국정 운영의 동력이 떨어질 경우 박 대통령이 ‘개헌에 반대를 하지 않는’ 수준을 뛰어넘어 개헌을 진두지휘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도 정치권에선 거론되고 있다. 개헌에 찬성하느냐, 어떤 개헌에 찬성하느냐를 잣대로 삼아 박 대통령이 정치권 재편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 정서는 ‘대통령 내 손으로 선출’ 선호우리 국민들이 대통령직선제를 선호하는 데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72년 유신헌법 이후 87년 개헌까지 15년간 직선제를 빼앗겼고, 의원내각제를 실시한 제2공화국이 계파 간 싸움 끝에 5·16 군사정변으로 단명한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CBS·리얼미터가 개헌과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묻자 41.0%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택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선호는 19.8%, 의원내각제는 12.8%에 불과했다. 주요 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아무리 협치가 중요해졌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추진된다면 국민여론이 식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강원택 교수는 “지금까지의 개헌론은 다양한 권력 개편을 포장해 보여주는 미인대회 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개헌이 단순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민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가 개헌을 통해 세종시로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자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 지사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개헌을 하자는 취지에서 어젠다를 던졌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개헌=정치놀음’으로 인식하는 순간 추동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한쪽은 임기 손해 봐야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론을 2007년에 제안한 것은 “2008년은 17대 대통령의 임기와 18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함께 시작하는 연도이기 때문에 그 주기를 일치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현행 헌법하에 대통령(5년)과 국회의원(4년) 임기가 함께 시작하는 해는 2028년에야 돌아온다. 그 전에 새 헌법이 시행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중 어느 한쪽의 임기 단축이 불가피한 제로섬 게임 구조다. 국회의원과의 임기를 맞추기 위해 대통령의 임기를 늘릴 수도 없다.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 효력이 없다”고 현행 헌법(128조 2항)이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김형오 전 의장은 “300명(국회의원)이 손해 보는 것보다 한 명(대통령)이 손해 보는 게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대통령 임기를 줄이는 개헌이 있었다. 대통령의 임기는 1873년 이래 7년이고 연임이 가능해 최장 14년이었는데 이 임기를 줄이는 개헌론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매번 무산됐다. 그런데 95년 대통령에 당선된 자크 시라크는 2000년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개헌안에 찬성 의견을 밝혔고, 그해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됐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내년 대선에 출마하는 이는 개헌을 반드시 공약에 내걸어야 하며 시라크처럼 자신의 임기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사람만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재·추인영 기자 seaj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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