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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부끄러운 것은 생리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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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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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소녀는 일회용 생리대를 살 수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생리대 한 봉지의 가격은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루치 임금에 해당한다고 한다. 생리 한 번에 두 봉지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매달 이틀치 벌이를 몽땅 생리대 구입에 쓰는 것이다.

뻔한 살림에 이 정도 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한다는 건 언감생심이고, 낡은 천 조각을 길게 잘라 속옷 속에 접어 넣는다. 천 조각은 거칠어서 다리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천이 비어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생리 기간 중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 나갈 수 없다.

근자에 화제가 된, 생리대 가격 때문에 생리 기간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수건을 깔고 누워 있었다거나, 학교 화장실의 휴지를 말아 대고 있었다거나, 심지어 신발 깔창으로 대신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 중 하나처럼 들린다. 그런데 위의 사례는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의 이야기라며 BBC에서 최근 보도한 내용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보면 2015년 말라위의 일인당 명목상 국내총생산(GDP)은 353달러다. 186개국 중에 184번째다. 같은 해 한국의 일인당 명목상 GDP는 2만7513달러이고, 순위로는 28번째다. 경제수준의 격차가 무지막지하고 세계적 위상 역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저소득층 여학생이 생리 시에 처해야만 하는 상황은 놀랍게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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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경우 대략 12세 정도에 초경을 해 50세 정도에 폐경이 된다고 하니 40년 가까운 세월을 매달 적어도 네댓새 정도 생리를 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통증이 매우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더 심한 경우는 생리전증후군도 있다. 생리가 가까워질 때 두통이나 요통 등은 물론 수면장애나 정서적 불안정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인구의 절반이 겪는 일이고 인구의 절반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와 관련된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기능이 향상된 생리용품이 개발된 것은 그나마 큰 도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르는 사이 피가 새어 나와 옷에 벌겋게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생리 중인 여성들에게는 최대의 악몽 중 하나인 것이다.

말라위의 소녀들은 천 조각을 빨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거나 밤 늦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방구석에서 몰래 말린다. 생리를 부끄러운 일이고 일종의 금기로까지 여기는 사회에서 생리대로 사용한 천 조각을 내놓고 햇볕에 말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리란 내놓고 이야기하기에 꽤나 불편한 주제이므로 차마 엄마가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못하고 이웃이나 할머니 또는 친척과 같은 더 먼 관계의 사람에게서 듣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생리는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다. 생리 중이라는 사실은 표가 나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이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식을 낳아 인류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고 역설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렇게 취급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당혹스럽거나 괜히 민망하거나 더 나아가 더럽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녀들은 생리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고, 생리대를 어떻게 티가 안 나게 학교 화장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지를 익명 게시판에 물어보고, 허리춤에 숨겨 가라거나 하는 답변을 얻는다. 어른들이라고 해서 더 당당하거나 처지가 나을 리는 없다. 그러니 가능한 한 티 나지 않게 얇고 흡수력이 좋은 생리대라는 것은 가임기의 여성이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필수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녀들에게 일회용이 아닌 면생리대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주장도 있다. 환경에도 좋고 몸에도 더 좋다는 거다. 그러나 생리가 부끄럽지 않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다들 생각하기 전까지는 이는 무리한 요구다. 면생리대란 활동이 불편하고 피가 배어 나올 위험이 있다. 게다가 관리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체육시간은 어쩔 건가 말이다.

학교에 일회용 생리대를 의무적으로 비치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고,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다닐 수 없는 처지인 소녀들을 위해서는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이를 무상으로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이에 더해 성인의 경우에도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일각에서는 ‘창피하지 않도록 조용히’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생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생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누군가는 수건을 대고 누워 있고 그 피 묻은 수건을 몰래 빨아야 하는, 생리통을 참아 가며 억지로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회가 부끄러운 것이다.

김 세 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