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테러를 겪은 올랜도. 15일 오전(현지시간) 도심의 오렌지카운티 청사 주차장에서 만난 앤서니 페라리는 “이렇게 위험한데 즉흥적인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겠는가”라며 “나라면 경험을 갖춘 침착한 대통령(힐러리 클린턴)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 살배기 우리 아들처럼 행동하는 트럼프에게 테러 대책을 세우게 할 수는 없다”고도 말했다.
미 대선 풍향계 된 플로리다
“외치 경험 갖춘 클린턴이 낫다”
“트럼프, 말 많아도 할 일은 할 것”
청사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주택가 인근의 식당 골든 코럴. 점심 시간에 경로 할인을 해줘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샐러드를 먹고 있던 밥 모우(84)는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강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일미군으로 복무하며 한국을 자주 찾았던 그는 아직도 영등포를 기억했다. 모우는 “트럼프는 말이 너무 많지만 해야 할 일은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총기 테러를 겪은 올랜도는 위기를 극복하자는 데선 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다음 대통령을 놓곤 동상이몽의 반응이 나온다. 올랜도는 최악의 테러가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짐작하게 하는 축소판이 될 수 있다.
CBS방송이 테러 이후인 13∼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테러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놓고 51%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25%에 불과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ABC방송이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8∼12일)는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가 한 달 전의 60%에서 70%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지지층은 테러 불안감에 속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백인 여성인 수 비숍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무슬림에 대한 공포가 늘었다”며 “내심은 트럼프로 가는 이들이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숍은 “오바마 대통령은 말은 잘하지만 여론에 잘 보이려고만 한다”며 “하지만 트럼프는 비난을 의식하지 않고 할 말을 하니 트럼프야말로 포퓰리스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올랜도 외곽 발렌시아대에선 총기 테러로 숨진 학생 7명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장을 지나던 학생 조지 발레스(23)는 “테러가 대선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 같다”며 “이슬람국가(IS)와 싸우려면 트럼프처럼 배짱이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테러 불안감이 다른 한쪽에선 트럼프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오렌지카운티 공무원인 흑인 헤이스팅스는 “이럴 땐 성숙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트럼프는 통합을 이끌어낼 사람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테러 희생자 추모소에서 만난 흑인 여성 앤젤라 존슨도 “트럼프는 침을 뱉듯이 내뱉는 자신의 말에 다른 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입는지 모르고 있다” 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테러 극복을 지원하기 위해 16일 올랜도를 찾았다. 이를 앞두고도 서로 다른 얘기가 나왔다. 모우는 “테러는 이미 일어났는데 (이를 막지 못한 대통령이) 이곳을 왜 오나”라며 “오바마나 클린턴이나 웃기는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발렌시아대 추모 행사에 참석한 잭 로저스(60)는 “대통령이라면 참극의 장소를 찾을 자격이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하러 오는 게 아니라 희생자 유족을 만나러 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테러를 막으려면 트럼프로는 안 된다. 외치의 경험을 갖춘 클린턴이 낫다”는 클린턴 지지자였다. 테러 충격을 겪은 올랜도의 표심은 클린턴과 트럼프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건 어떻게 하나 된 미국을 만들지가 당면 과제임을 예고했다.
올랜도=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