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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으로 돌아가자"|일 작가 사마료태랑 중앙일보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본의 저명한 역사소설가「시바·료오따로」(사마료태랑·62)씨가 중앙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아 특별기고를 보내왔다.
일본국민들 사이에 가장 폭넓게 읽히고 있는 국민문학의 최고봉인 「시바·료오따로」씨는 최근 미국을 여행한바 있는데 다음은『릴랙스(relax)에 관하여』라는 제하의 그의 특별기고 내용이다.
캘리포니아의 그 조그만 별장지는 우체국이나 영화관까지 스페인 풍의 건물이었다. 어느 건물이나 새것이다.
『산불로 시가지가 몽땅 타버린 뒤 의논 끝에 별장도, 공공건물도 모두 스페인 풍으로 지었죠』
이 고장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야말로 희한한 일이다. 미국인은 뉴잉글랜드 풍의 주거를 좋아하며 특히 별장을 가질만한 수입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모양이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집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이 주거양식의 원류는 영국에 있다. 미국인은 영국에서 온 사람이 지금도 혈통이 좋은 것으로 인정된다. white로서 Anglo-Sexon이며 protestant라는 머릿자를 따서WASP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혈통인 것이다.

<스페인 풍의 의미>
그런 감각으로 말한다면 스페인계란 아주 낮다. 위대한 대항해시대의 스페인쯤으로는 사람들이 대체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리어 스페인사람과의 혼혈로 이루어진 중·남미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주택을 연상하고, 따라서 그러한 주택양식을 낮은 것으로 친다.
계제에 덧붙인다면 스페인풍 주택이라는 것은 벽돌로 된 외벽이나 내벽이나 흰 회반죽을 칠한 집으로서 출입문은 아치형으로 도려내어져 있다. 실로 맵시 있는 것이지만 이상의 이유와 채광이 나쁘다 해서 미국인은 일반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리(타운)만은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 멍청이가 어디 있겠어요』
미국 통인 사람은 이렇게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그 거리에서 일박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샌타 바바라라는 거리다. 이름마저도 스페인적이다. 캘리포니아 그 자체가 일찍이 스페인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은 대체로 스페인 풍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반면에 『농담이 아니야. 미국의 잡스런 합리주의적 건물보다 스페인의 건물 쪽이 훨씬 예술적이 잖은가』

<불합리의 평온함>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요즈음 늘어났다. 이런 것은 미국의 근대적인 빌딩과 스페인의 대성당(kathedrale)을 아울러 생각하면 약간 알 듯한 느낌도 든다.
요컨대 전기한 샌타 바바라에서는 새로 지어지는 별장은 모두 스페인 풍인 것이다. 이 사실은 현대=합리주의의 일변도였던 미국인이 합리주의의 고생스런 주생활과 으스스한 한기에 적이 머리를 갸우뚱하기 시작한 조그만 증거의 하나라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지구상에는 인간들의 문화로 꽉 차있다. 샌타 바바라에서는 그 단편의 하나인 스페인 풍을 채용함으로써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란 본래 불합리한 것이다. 인간은 물고기집의 고기처럼 미로같은 「전통적 불합리」(즉 관습문화)에서만 마음의 편안함을 느낀다. 문명이라는 합리주의(보편주의) 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젊음이라는 정신적 체력이 있는 시대에 한정된다.
『나이를 먹으면 역시 유교가 좋거든』
이렇게 내 친구인 한국인 작가는 말했지만 이것은 문명과 문화라는 상이한 본질을 잘 지적하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나는 불합리한 관습의 애호자는 아니다). 샌타 바바라는 은퇴자의 거리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스페인 풍은 이질문화라고는 하나 정신의 활력이 쇠퇴한 나이에는 그 채광이나 통풍이 좋지 않은 불합리성마저 마음의 평온을 주는 것이다.
이 원고에서는 다른 것을 쓸 작정이었다. 릴랙스(relax)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릴랙스라는 말은 일본어가 되어버렸다. 일을 끝내고 막 역에 당도해서 전(동)차를 기다리는 동안 넥타이를 느슨하게 늦추고 벤치에 앉아서 깡통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런 경우 『릴랙스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에 나온 샌타·바바라에서 저명한 저널리스트와 술을 마셨다. 그는 젊었을 때 해군에서 일본어를 익혀 인생의 절반을 극동특파원으로 보낸 사람이다. 극동 3국에 관해서도, 동남아시아에 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일본어를 익혔지만 털어놓고 말한다면 일본인보다 중국인 쪽이 좋아』
이렇게 말하고 한 눈을 찡긋했다. 그 표정에 진지함이 보여 본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 그렇지.』
『차이니즈는 릴랙스하게 지내니까.』
나는 퉁기칠 듯이 웃었다.
『동감이야. 나도 가끔씩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나는 말했다.
참고로 릴랙스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본다.
lax란 「쓸쓸하지 않다, 게으른」이라는 뜻이다. 그것에 re가 붙는다. 나는 영어에 무지하지만 re가 붙으면 「다시」라든지, 「역으로」라든지, 또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라든지 하는 의미가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릴랙스란 『늘 그렇듯이 느긋하게 있다.』라는 의미가 된다.
정작 이런 것을 쓰는 것이 이 원고의 주제였다. 무심결에 샌타 바바라니, 문화(불합리한 관습)야말로 인간을 릴랙스하게 한다느니 하는 것에 사로잡혀 버렸다.

<선수가 출전할 때>
지난번에 올림픽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미국인 코치가 출전 직전의 자기 선수의 어깨를 끌어안고 『릴랙스해야 해』라고 거듭 말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본인이라면 『분발해라』라고 기합을 넣는다.
특히 응원석은 그렇다. 응원석에서 『농땡이 부려라, 농땡이 부려』라고 대합창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나중에 조사해보았더니 구미의 경우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주의를 시키는 말은 『릴랙스』라는 것을 알았다. 가끔 번역된 미국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대화에 부딪치기도 했다.
구미인은 불필요한 긴장이 무척 싫은 모양이고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이 보기에 꼴이 사납기도 하다. 이것은 나도 안다. 좌선에서는 초심자에 대해 『보다 편안하게』라고 말한다.
한국에는 조계종의 전통이 있으니까 이런 것을 이해해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깨의 힘을 빼십시오. 얼굴을 그렇게 긴장시키지 말고, 얼굴로 좌선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음을 차분하게. 평상심을 가져라.』
즉 릴랙스하라. 양의 동서에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전신으로 웃는다>
릴랙스란 『원래의 나태로 돌아가라』하는 의미인데 진지한 경우에 쓰이는 이 말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기 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내놓아라』하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학교에 다니던 옛날을 회상했다. 입학시험에서는 모두 상기되어버려 대체로 평소실력의 8할 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침착하게 하라』는 선생의 말을 들었다. 이 「침착하게」라는 일본어가 지금의 『릴랙스하라』하는 의미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어딘지 다르다. 더 릴랙스쪽이 범위가 넓다. 특별히 스포츠니, 입학시험이니 하는 경우이외에도 적극적인(긍정적인) 말로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차이니즈는 언제나 릴랙스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는 미국 노기자의 말은 넓은 범위의 사용예인 것이다. 이것을 장황한 설명어로 바꾸어 말하면 『누구에 대해서나 평소의 자기 마음의 가장 좋은 부분을 얼굴에도 말에도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는 작년에 조촐한 파티에 참석했다.
친구인 진순신(재일중국인 작가)의 축하모임이었다. 송씨라는 주일대사도 참석하여 그가 인사말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올라갔을 때는 릴랙스의 극치였다.

<자기훈련이 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단상 끝에서 중앙에 있는 마이크의 위치까지 열 걸음쯤 된다. 벙끗벙끗 웃으며 도중에서 발을 멈추고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신으로 방끗벙끗한다. 다시 걷는다. 다시 멈춰서서 미소의 잔물결을 일으킨다. 마침내 마이크까지 당도했으나 그가 한 말이라고는 『셰셰(사사=감사합니다.)』
이런 정도의 것이었다. 전신으로 진씨에 대한 축하의 감정을 표현하고 또 모인 사람들에게 중국의 피플을 대표하여 감사하고 있다. 누구나가 친족으로 이런 아저씨(백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으리라. 만장에 박수소리가 터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며칠 전에 뉴욕에서 돌아왔다. 거리에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진절머리가 났다. 어째서 우리들은 자기의 성격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걷는 훈련을 해오지 않았던 것일까.
한국인도 일본인도 「텐션민족」이란 말을 듣고 있다. 1950년대 일본에서 자조적으로 『일본인은 텐션민족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릴랙스」, 나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릴랙스에는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한국인·일본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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